베트남 불교가 2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식
국내 여행을 많이 해보신 분들은 알 거다. 우리나라 교회의 수가 얼마나 많은 지를
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가 엄청 많이 보이는데 거의 공동묘지 수준이다.
통계로 보면 2024년 추정으로 전국에 약 72,000개 정도가 있다고 하고 이것은 2025년 말 기준 약 5만 3천 개인 편의점 보다 많은 수치다.
우리나라 국민의 다수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독교처럼 베트남에도 전 국민이 불교의 영향권에 있다.
당신이 여행중 하노이 올드쿼터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향 냄새을 맡은 적이 있을 것이다.
냄새를 따라가면 좁은 문이 나오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있고,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노란 벽에 기와지붕이 얹힌 낡은 건물이 있다. 절이다. 큰 절이 아니다. 동네 절이다.
베트남에도 2026년 기준으로 약 18,000개 이상의 대소 사찰이 전국에 분포해 있다고 한다.
베트남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다. 시장 안쪽에, 오피스 빌딩 옆 골목에, 오토바이 수리점 사이에 절이 있다. 우리집 근처에도 골목 여기저기에 절이 있다. 내가 아침에 쌀국수를 먹으러 나설때에도 마트를 갈 때도 마추지는게 절이다 아마 우리 동네에 내가 확인한 절 수만 5-6개는 족히 될 정도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 이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베트남 불교는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왕조가 바뀌어도, 전쟁이 나도, 공산 정권이 들어서도 이 나라의 골목에서 향 연기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히 동남아 불교는 소승불교라고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불교는 기원과 발전과정이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도 많이 다르다.
베트남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서기 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경로가 두 가지였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바닷길을 통해 남쪽에서 들어온 것이 하나, 중국을 통해 북쪽에서 내려온 것이 다른 하나.
흥미로운 것은 베트남 북부가 오히려 남중국보다 불교를 먼저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3세기 소그디아나 출신 승려 캉썽후이는 베트남 북부(당시 쟈오찌)에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고, 이후 중국 강남으로 건너가 불교를 처음 전한 인물이 됐다. 베트남이 중국에 불교를 가르쳐준 셈이다.
중국의 지배를 받은 천 년 동안 베트남 불교는 중국식 대승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938년 독립 이후 리 왕조와 쩐 왕조 시기가 베트남 불교의 황금기였다.
승려들이 왕의 고문으로 정치·군사·외교에 참여했고, 사원이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5세기 레 왕조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불교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베트남 불교를 다르게 만들었다.
왕실의 종교가 아니라 민중의 종교가 됐다. 골목 절이 생겨난 것이 이때부터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가톨릭이 상층부로 파고들 때, 불교는 고통받는 민중의 정신적 기반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렸다. 권력을 잃으면서 오히려 더 강해진 종교. 그것이 베트남 불교의 역설이다.
베트남 사원에 들어가면 한국이나 중국의 절과 다른 것이 있다.
불상 옆에 공자상이 있고, 도교 신상이 있고, 민간신앙의 여신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같은 공간에서 불교와 유교와 도교와 토착 신앙이 공존한다.
베트남어로 이것을 '탐자오(Tam Giáo)', 세 가지 가르침이라고 부른다.
불교·유교·도교가 하나로 합쳐진 베트남 특유의 종교 방식이다.
여기에 조상 숭배와 정령 신앙이 더해진다.
이론적으로 충돌이 있어 보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학자들은 베트남을 '사실상의 민간신앙 국가'라고 부른다.
우리가 아는 베트남의 불교 인구는 80% 이상 수준이지만, 이것도 사실 많이 다르다.
실제로 불교적 관행을 가진 사람은 인구의 절반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불교는 스스로를 불교 신자라고 하지 않아도, 명절에 절에 가고, 향을 피우고, 조상에게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다.민간신상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다.
어떤 권력이 들어와도, 어떤 외래 문화가 밀려와도 베트남 불교는 그것을 흡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골목마다 향 연기가 피어오른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절은 예배 장소이면서 동시에 생활의 중심이다.
시험을 앞두고 간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간다.
아이가 아프면 간다. 명절에는 가족이 함께 간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가고, 나쁜 일이 있어도 간다.
특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향 한 개비를 피우고 잠시 서 있다 오는 것이 전부인 경우도 많다.
오래 살면서 본 것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절에서 기도할 때 그들은 조용하다.
큰 소리도 없고, 격한 몸짓도 없다. 향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나온다.
무언가를 요청하는 기도라기보다는, 어딘가에 잠깐 내려놓는 행위처럼 보였다.
장례도 절에서 치른다. 베트남 전통 장례는 사흘 이상 진행되며 승려가 독경한다.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의식이 절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이 나라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해준다.
전쟁이 끝난 뒤 사회주의 정부는 한때 종교 활동을 제한했다.
그러나 절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계속 갔다.
금지할 수 있는 것과 금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베트남 정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남아 최대 사원이라는 베트남 닌빈에 위치한 바이딘 사원(Bai Dinh Pagoda)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베트남 불교에는 고유한 선종 종파가 있다. 쭉 럼(竹林, 죽림)파다.
13세기 쩐 왕조의 황제 쩐 년 똥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 세운 종파다.
몽골의 침입을 두 번 막아낸 황제가 왕좌를 내려놓고 승려가 됐다.
그가 죽림산에 들어가 세운 이 종파는 이후 베트남 불교의 주류가 됐다.
죽림파의 특징은 선(禪)과 정토 염불을 결합하고, 거기에 베트남 고유의 민간신앙을 흡수한 것이다.
중국 불교를 받아들이면서도 베트남 사람들의 방식으로 변형했다.
외래 사상을 그대로 수입하지 않고 자기화하는 베트남의 태도가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죽림파는 지금도 살아 있다. 하롱베이 근처 안뜨 산의 절들이 죽림파의 본거지로 베트남 불교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베트남 사람들이 절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불교 의식인 동시에 조상 숭배이고 민간 신앙이다.
세 가지가 겹쳐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구분하지 않는다.
향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생각했다.
전쟁을 살아낸 어머니들의 기도.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침묵. 시험을 앞둔 학생의 두려움.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상인의 바람. 그 모든 것이 향 연기와 함께 올라갔다.
베트남이 외세의 지배를 천 년 이상 받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유를 역사책은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그런데 내가 오래 살면서 느낀 것은, 골목마다 있는 그 작은 절들이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여행을 하다가 골목에서 절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권한다.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깐 서 있기 위해서.
향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가 2천 년 동안 그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잠깐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베트남을 가장 가까이 느끼는 방법 중 하나다.
절은 베트남에서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이 나라의 사람들의 고민과 소원을 들어주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