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가능성에 대해서
베트남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쌀국수, 오토바이, 분짜, 하롱베이.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이 나라가 전 세계 스마트폰 수억 대에 깔린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동남아 최대 규모의 통신 기업을 키워냈다는 것,
유럽 사람들이 매일 마시는 커피를 수출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나라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4년 2월, 전 세계 앱스토어 게임 순위가 동시에 뒤집혔다. 앵그리버드도, 캔디크러시도 아니었다. 하노이에 사는 29세 청년 응우옌 하 동(Nguyễn Hà Đông)이 혼자 만든 플래피버드(Flappy Bird)가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1위에 올랐다.
새 한 마리가 파이프 사이를 날아가는 게임. 화면을 터치하면 새가 올라가고 손을 떼면 떨어진다.
그것이 전부다. 그런데 난이도가 무자비해서 사람들이 중독됐다.
출시 당시 마케팅은 없었다. 입소문만으로 5,0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가 됐다.
하루 광고 수익이 5만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응우옌 하 동은 2014년 2월, 게임이 최고 인기를 달리던 바로 그 시점에 앱스토어에서 게임을 내렸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게임에 너무 빠져드는 것이 본인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청년을 다뤘다. 대형 게임사들이 수백만 달러에 게임을 사겠다고 나섰지만 그는 거절했다. 베트남이라는 이름이 세계 IT 뉴스 1면에 오른 것이 이때였다.
2021년, 블록체인 게임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가 전 세계 NFT 게임 시장을 뒤흔들었다.
시가총액 25억 달러를 돌파했고, 하루 이용자가 200만 명을 넘었다.
필리핀에서는 이 게임이 생계 수단이 됐다는 기사가 전 세계 언론에 실렸다.
만든 곳은 호찌민시에 본사를 둔 스카이 마비스(Sky Mavis)다.
1992년생 CEO 응우옌 탄 쭝(Nguyen Thanh Trung)이 2018년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창업을 위해 자퇴한 사람이다.
그는 처음엔 블록체인을 싫어했다고 했다. 2017년 크립토키티라는 게임을 해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가 1억 5,200만 달러 투자를 이끌었다. a16z 파트너 아리아나 심슨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엑시 팀은 게임 업계에 지진을 일으켰다.
이 산업은 이제 영원히 바뀌었다."
쭝 CEO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베트남 회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법인 주소는 싱가포르지만 팀의 대부분은 베트남 사람이다." VNG에 이은 베트남의 세 번째 유니콘이 됐다.
VNG는 2004년 베트남 젊은이 다섯 명이 게임 회사로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비나게임(VinaGame)이었다. 2014년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으며 베트남 최초, 동남아시아 최초의 테크 유니콘이 됐다.
지금의 VNG는 게임 배급 외에 베트남 최대 메신저 잘로(Zalo)를 운영한다.
잘로는 베트남에서 카카오톡 같은 존재다. 베트남 사람이면 거의 다 쓴다.
클라우드, 결제, 인공지능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싱가포르의 테마섹이 2019년 VNG를 22억 달러로 평가했다.
베트남에 오래 살다 보면 VNG가 만든 것들이 일상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앱을 열면 잘로가 있고, 게임방에 VNG 배급 게임이 있고, 쇼핑몰에 VNG 결제 시스템이 있다.
비나밀크(Vinamilk)는 베트남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제품 브랜드다.
1976년 국영 기업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베트남 유제품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동남아시아 수십 개 나라에 수출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통일된 지 1년 만에 세워진 회사다.
그 시절 물자가 부족하던 나라에서 우유 공장이 돌아갔다.
지금은 포브스 베트남 브랜드 가치 1~2위를 오가는 기업이 됐다.
뉴질랜드와 미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고, 우유를 40개국 이상에 수출한다.
베트남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 박스에 비나밀크 로고가 있다.
그 박스가 지금은 아시아 전역 마트에 있다.
전쟁 후 가난한 나라에서 시작한 유제품 회사가 동남 아시아를 대표하는 우유회사가 된 것이다.
비엣텔(Viettel)은 베트남 국방부 산하 국영 통신 기업이다.
시작부터 특이하다. 군대가 통신 회사를 만든 것이다.
지금은 베트남에서 가장 브랜드 가치가 높은 기업 1위를 여러 해째 지키고 있다.
브랜드 가치만 40억 달러를 넘는다.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아이티, 카메룬 등 아시아·아프리카 10개국 이상에서 통신 사업을 하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다.
베트남 어디를 가도 비엣텔 간판이 있다. 오지의 작은 마을에도 비엣텔 유심이 팔린다.
베트남이 통신 인프라를 전국으로 빠르게 깐 데에는 비엣텔의 역할이 컸다.
군대에서 시작해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통신사. 그것이 비엣텔이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데 이 회사를 빠뜨릴 수 없다.
FPT의 원래 이름은 'Food Processing Technology'였다.
1988년 식품 가공 기술 회사로 출발했다. 그것이 지금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IT 기업이 됐다.
FPT 소프트웨어는 45개국에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원 3만 명 이상,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 한국 기업들도 FPT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긴다. 신한은행, LGCNS, KT클라우드 등이 FPT와 협력했다.
베트남 거리를 걷다 보면 'FPT' 간판이 보인다. 스마트폰 가게다.
FPT 유통 자회사가 전자 제품 오프라인 매장을 베트남 전국에 운영한다.
IT 기업이 제조부터 유통, 서비스까지 수직 통합한 구조다.
플래피버드 한 번 해봤는가. 잘로에서 메시지 받아봤는가. 베트남산 우유 마셔봤는가.
베트남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만든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