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넌 사람들

우리와 너무 닮은 이민의 역사

by 무타리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됐다.

북베트남 탱크가 대통령궁 문을 밀고 들어오는 장면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군인, 공무원, 미제 정권과 협력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

일부는 미군 헬기를 탔다. 일부는 남베트남 해군 함정에 올라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작은 보트를 택했다.

좁은 어선에 수십 명이 올라타 목적지도 불분명한 채로 남중국해로 나갔다.

그들을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고 불렀다.

1975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약 80만 명이 그 바다를 건넜다.

25만 명이 바다에서 죽었다는 추정이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미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로 흩어졌다.


한국과 너무 닮은 이야기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인은 낯설지 않다.

분단된 나라. 남쪽과 북쪽. 이념으로 갈라진 가족. 전쟁이 끝난 뒤 패배한 쪽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 1950년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몰렸던 것처럼, 1975년 베트남의 피란민들은 바다로 나갔다.

실제로 한국은 그 보트피플을 받아들인 나라 중 하나다. 부산에 베트남 난민 수용소가 1975년부터 1993년까지 운영됐다. 약 3,000명의 베트남 난민이 그곳을 거쳐 제3국으로 떠났다.

1985년에는 인도양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원양어선 광명 87호가 표류하던 베트남 난민 96명을 구조했다.

선장은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결정을 내렸다. 이후 2년 넘게 배를 타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았다.

한국은 이미 이런 전쟁의 피해국이였으며 피란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선장은 그것을 몸으로 기억하는 세대였다.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 난민들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루이지애나에 집중됐다.

기후가 베트남과 비슷한 곳들이었다. 그들은 차이나타운 옆에, 혹은 그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언어가 없었다. 직업도 없었다. 학위가 있어도 인정받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의사였던 사람이 미국에서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다. 군 장교였던 사람이 식당에서 그릇을 닦았다.

그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말한 것은 하나였다. 공부하면 우리는 못 올라가도 너는 올라갈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세 번째 해외 작품인 동조자란 드라마도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의 작가도 베트남계 이민 1세대이며 냉소적인 유머로 그 시대의 베트남인들의 삶을 풍자한다.

그 자식들이 지금 알리 웡이고, Kelly Marie Tran이다

의대에 가고, 판사가 되고, 의원이 됐다.

1970년대에 빈손으로 온 세대의 자식들이 한 세대 만에 미국 주류 사회로 들어갔다.

그 속도는 한국 이민자 2세들의 이야기와 겹친다. 부모가 세탁소를 하고, 자식이 하버드를 갔다는 그 패턴.

언어보다 수학을 먼저 배우고, 정체성보다 성적표에 더 무게를 뒀던 그 세대의 자식들.

20260417070108.jpg Ke Huy Quan - 1971년생, 영화 구니스, 인디아나존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출연. 역시 어린 시절 베트남 전쟁으로 난민이 되어 베트남을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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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베트남계 미국인 2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

베트남에 가면 완전한 베트남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완전한 미국인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전쟁 기억을 직접 갖고 있지 않지만, 그 무게를 유산으로 받는다.

영어는 완벽하지만 베트남어는 서툴다. 베트남 음식은 좋아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전부라고 느끼지 않는다.

알리 웡이 코미디로 꺼낸 것도 이런 이야기들이다.

베트남 이민자의 딸이지만 베트남을 본 적이 없다.

아시아 여성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 사이의 자리를 찾는 것이 한 세대의 과제였다.

재미동포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이라고.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그 세대.

베트남계 미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은 그 감정을 공유한다.


그들이 만든 것들

그래서 비프(BEEF)는 우연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이성진이 만들었고, 베트남계 미국인 알리 웡이 주연을 맡았다. 상대역은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연이었다.

드라마 안에서 한국인 커뮤니티와 베트남계 미국인 캐릭터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하고 화해한다.

우연이 아닌 이유가 있다. 두 공동체는 미국 안에서 비슷한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비슷한 정착 과정을 겪었다. LA 코리아타운 옆에 베트남 타운 'Little Saigon'이 있다.

같은 이민자 동네에서, 같은 말을 들으며,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자란 사람들이다.

그 공동체에서 나온 2세들이 지금 할리우드를 바꾸고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언어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안에서 우리도 약간은 다르지만 아주 비슷한 공감대와 이야기를 같이 만든건 아닐까.

베트남 사람들과 우리는 여러모로 아주 비슷하다.

전쟁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세기 뒤 화면 위에서 이야기로 다시 만났다.

20260422191507.jpg Little Saigon In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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