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 골목도, 집들도 — 그 색에는 두 개의 역사가 겹쳐 있다
호기심이나 관찰력이 뛰어나신 분들은 베트남에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실 것이다.
왜 이 나라의 벽은 노란색일까.
절 담장도, 골목 안 낡은 집도, 호찌민 사이공 중앙우체국도,
하노이 올드쿼터 어딘가의 카페도 색이 다 비슷하다.
황토빛이 도는 그 노란색.
뜨거운 햇빛 아래서 더 선명해지고, 저녁이 되면 따뜻하게 물드는 그 색.
베트남을 처음 여행한 사람들도 이 색에 먼저 반응한다. 사진을 찍으면 알아서 서정적이 된다.
굳이 필터를 걸 필요가 없다. 그 노란 벽 앞에 서면 배경이 스스로 완성된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왜 노란색 회벽을 베트남 사람들이 선호하는지.
이 색에는 두 개의 역사가 겹쳐 있었다.
베트남의 노란 건물들을 이야기할 때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빠뜨릴 수 없다.
1858년부터 약 100년간 베트남을 지배한 프랑스는 하노이, 사이공(지금의 호찌민), 후에에 자신들의 방식으로 도시를 설계했다. 관청, 법원, 우체국, 학교, 총독 관저.
이 공공 건물들은 프랑스 남부와 북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자주 쓰이던 오크르(Ochre), 황토색 계열의 외벽으로 마감됐다.
이유가 있었다. 황토 안료는 열대 기후에 강하다.
강한 자외선에 색이 잘 바래지 않고, 습한 계절에도 외벽이 갈라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거기에 프랑스 건축의 미감이 더해졌다.
아치형 창문, 목재 덧문, 좁고 높은 비례. 그 위에 황토 노란 회벽.
1891년 완공된 호찌민 사이공 중앙우체국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노란 외벽에 아치형 입구, 철골 구조의 내부. 지금도 실제로 운영 중인 이 건물은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히는 건물 중 하나다. 식민지 시대의 건축이 관광 자원이 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프랑스가 지은 건물들이 도시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그 색이 도시 풍경의 기준이 됐다.
그 옆에 지어지는 건물들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색을 따라갔다.
식민지가 남긴 색이 도시 전체의 피부색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완전하지 않다.
프랑스가 오기 전에도 베트남의 건물들은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다른 뿌리가 있었다.
베트남에서 노란색은 왕의 색이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노란색, 특히 황금빛에 가까운 황색은 황제와 왕족을 상징했다.
중국에서 황제만이 황색 용포를 입을 수 있었던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노란색은 권위와 신성함의 색이었다. 응우옌 왕조의 황제가 입은 옷, 왕궁의 기와와 장식, 불교 사원의 벽. 노란색이 거기 있었다.
베트남 국기 이야기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금성홍기(金星紅旗). 붉은 바탕에 노란 별.
국기를 디자인한 혁명가 응우옌 흐우 티엔은 노란색이 베트남 민족의 피부색이자 민족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남베트남 국기도 노란 바탕에 세 줄의 붉은 선이었다.
노란색은 체제를 초월해 베트남 사람들이 공유하는 색이었다.
불교 사원의 노란 벽도 이 전통에서 나온다. 사원은 신성한 공간이고, 신성한 공간에는 왕의 색인 노란색이 어울렸다. 황토 안료는 오래전부터 구하기 쉬웠고, 그 색이 가진 의미가 더해지면서 사원 벽의 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베트남 골목의 노란 벽은 두 개의 시간이 겹친 것이다.
왕조 시대부터 이어온 전통의 노란색,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가 덮어씌운 콜로니얼 건축의 노란색.
두 층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다 보니 그 색이 더 깊어졌다.
베트남에서 노란 벽을 가장 극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중부 도시 호이안(Hội An)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호이안 구시가지는 16~17세기 동아시아 무역항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 상인, 중국 상인, 베트남 원주민이 섞여 살던 이 항구 도시의 건물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치며 하나같이 짙은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호이안의 노란색은 다른 도시보다 채도가 높다.
관광지화되면서 보존과 복원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색이 더 선명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결과는 아름답다. 밤에 강을 따라 등불이 켜지면 노란 벽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수면에 그 색이 반사된다. 그 장면이 호이안을 베트남 여행의 상징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호이안을 처음 가는 사람에게 한 가지를 말해두고 싶다.
낮보다 이른 아침이 더 좋다. 관광객이 몰리기 전, 골목이 비어 있을 때.
그 시간에 노란 벽은 다른 표정을 한다. 조용하고, 오래된 것의 냄새가 난다.
베트남 노란 벽의 유래를 알고 나서 그 벽을 다시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프랑스가 이 나라를 지배하며 자신들의 미감을 도시 곳곳에 새겼다.
황토 안료로 공공건물을 칠했고, 그 색이 도시의 기준이 됐다.
침략자의 색과 전통의 색이 우연히 일치했다.
아니면 프랑스가 그 땅의 색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지금 골목에서 바라보는 그 노란 벽은 한 개의 역사가 아니라 여러 겹의 시간이 쌓인 것이다. 왕조의 기억, 식민지의 흔적, 그리고 그것을 다 거치고도 지금 거기 서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는
이 색깔에 대한 어떤 거부감도 없다.
베트남 여행에서 사진을 찍을 때 노란 벽 앞에 서는 이유가 있다.
그 색 안에 베트남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란색 벽 이웃집 할머니가 문 앞에서 가끔 마실은 나가는 우리동네 노란색 대왕 고양이를 환대한다.
역사는 그렇게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