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미학이 한 벌의 옷에
처음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을 제대로 본 것은 하노이 거리에서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여학생이었다. 흰 아오자이에 흰 바지, 머리카락이 헬멧 아래로 빠져나와 바람에 날렸다. 그 장면이 몇 초도 안 됐는데 오래 기억에 남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오자이(Áo Dài). 길다는 뜻의 '자이(Dài)'와 옷이라는 뜻의 '아오(Áo)'가 합쳐진 이름.
긴 옷.
이름은 단순한데, 이 옷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아오자이의 기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중부를 다스리던 응우옌 왕조의 초대 군주 응우옌 푹 코앗(Nguyễn Phúc Khoát)은 1744년경, 남부 지방 여성들에게 기존의 헐렁한 전통 의상 대신 앞뒤 두 폭으로 나뉜 긴 상의와 바지를 함께 입도록 권했다. 북부 찐 왕조와의 정치적 차별화, 그리고 중국·참파 문화와 다른 베트남 남부만의 정체성을 옷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정치적 선언이 옷의 형태를 빌린, 그것이 아오자이의 원형이었다.
처음부터 아오자이는 단순한 의복이 아니었다.
이후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아오자이는 큰 변화를 맞는다.
1930년대 하노이의 화가 캇뚜엉(Cát Tường)이 유럽 재단 기법을 접목해 몸의 선을 따라 흐르는 현재의 형태를 만들었다.
허리를 드러내고 목선을 강조하며 옷감이 몸을 따라 떨어지는 구조. 당시 이것은 파격이었다.
보수적인 여론의 반발이 있었다. 너무 드러낸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 옷을 입었다.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아오자이는 식민지 시대에 베트남 여성들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선언한 옷이기도 했다.
전쟁 중에도 아오자이는 살아남았다. 남부 사이공의 여성들이 입었고, 북부 하노이의 여학생들도 입었다.
분단된 나라에서 같은 옷을 입었다. 베트남 여성의 미는 남북이 따로 없었다.
아오자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색깔이나 자수 문양에 먼저 눈이 간다.
그런데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은 다른 곳을 먼저 본다. 목선이다.
아오자이의 깃(Cổ Áo)은 목을 세운 형태다. 옷깃이 목 주위를 감싸며 올라오고, 그 위로 목이 드러난다.
이 구조에서 목선의 길이와 각도가 전체 실루엣의 시작선이다.
목이 길고 가늘수록 아오자이의 세로 선이 살아난다. 반대로 목이 짧거나 어깨가 넓으면 깃의 선이 눌린다.
베트남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입을 때 머리를 올리거나 뒤로 묶는 이유가 있다.
목선을 비우기 위해서다. 목과 깃 사이의 공간이 드러날 때 아오자이 전체가 살아난다.
작은 귀걸이 하나로 충분한 이유도 같다. 장식이 많아지면 목선에서 시선이 분산된다.
목선 하나를 열어두고 나머지를 덮는 옷이다.
그 절제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게 한다.
아오자이는 기성복이 없다고 봐도 된다. 원래 맞춤 제작이다.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도 모두 맞춤이다.
재단사가 착용자의 신체 치수를 열다섯 군데 이상 잰다.
목 둘레, 어깨 폭, 가슴 둘레, 허리 둘레, 엉덩이 둘레, 그리고 허리 위치.
이 중에서 허리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겨드랑이에서 허리 라인까지의 거리, 즉 '상반신의 길이'가 아오자이 실루엣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허리가 짧다는 것은 겨드랑이에서 허리까지의 거리가 짧다는 의미다.
이 경우 아오자이의 허리 라인이 높게 올라오고, 옷감이 엉덩이 아래로 길게 떨어진다.
세로 선이 극대화된다. 키가 커 보이고, 다리가 길어 보이고, 전체 실루엣이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반대로 허리가 길면 허리 라인이 낮게 설정되고 옷감이 짧게 떨어진다.
세로 선이 잘리는 느낌이 생긴다.
베트남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입으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평균적으로 베트남 여성의 체형은 허리가 짧고 다리 비율이 높다.
그 체형이 아오자이의 구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아오자이는 옷이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이 옷을 완성하는 구조다.
재단사는 옷을 만들고, 착용자가 그 옷에 생명을 넣는다.
같은 아오자이라도 입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옷이 된다.
베트남 여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외모만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족하다.
전쟁을 살아낸 어머니들이 있었다. 논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등에 업었던 여성들이 있었다.
그 손으로 아오자이를 지었고, 그 마음으로 아오자이를 입었다.
축제일에, 결혼식에, 졸업식에, 설 명절에. 가장 좋은 날에 꺼내어 입는 옷이었다.
이 옷을 입은 여성들의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입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확신의 미소
단순한 옷이 아니라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 먼저 옷을 따라간다.
우리나라 한복을 입은 여성들도 한복을 입는 것만으로 걸음걸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처럼
등을 곧게 펴고, 목선을 열어두고, 천천히 걸어가는 그 모습.
나는 그것을 숭고하다고 느꼈다. 화려한 것이 아니라 절제된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품고 있는 것에서 오는 무게감.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성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전쟁 중에도 입었고, 가난 속에서도 지었고, 지금도 가장 중요한 날에 꺼낸다.
그 연속성 안에 이 옷의 진짜 아름다움이 있다.
아오자이는 그런 옷이다.
여러해살이풀 수련처럼 인생의 모든 고난위에서도 아름다움으로 부유하는 꽃처럼
가진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성정(性情)을 드러내는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