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이던데...

인생 살면 7, 80 화살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by 철없는박영감

코로나가 터지고는 노래방을 전혀 안 가지만, 그전에는 회사 동료들과, 혹은 친척 결혼식이나 다 같이 모이는 잔치에서 으레 술 한잔 걸치고 노래방을 갔다. 나름 노래 부심도 있어서 고음은 못 올려도 도입부는 분위기 잡고 기가 막히게 부를 수 있는 레퍼토리가 꽤 있었다. 노래방을 같이 가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전혀 놀 줄 모르게 생긴 샌님 같은 내가 미친 듯이 잘 논다는 점에 첫 번째로 놀란다. 그리고 특히 엄마가 많이 놀라는데, 외삼촌, 이모들 중에 심각한 음치가 많다. 그런데 외모가 외탁을 하다 보니 당연히 음치일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노래실력에 두 번째로 놀란다. 마지막 세 번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놀라는데 부르는 노래 스펙트럼이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것이다. 이미자 "아씨"부터 BTS "고민보다 고(GO)"까지 정말 웬만한 노래는 다 따라 부른다. 그래서 노래방 가면 손에서 마이크를 잘 안 놓는다. 누군가 부르다 지치면 내가 뒤에서 서포트한다. 그래서 나랑 노래방 같이 가면 노래 끊김 없이 항상 즐겁다.


내가 1979년 생인데, 이 나이대 분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음악시장을 동시에 관통한 세대이다. 아기 때 칼라 TV가 나오면서 “가요톱 10”, “토토즐”부터 “젊음의 행진”까지 이은하, 윤시내, 혜은이, 주현미, 전영록, 이지연, 박남정, 김승진, 변진섭, 강수지, 김건모, 신승훈 같은 지금은 전설이 된 가수들이 나오는 각종 TV쇼를 보며 자랐다. 또한 “별이 빛나는 밤에”, “2시의 데이트”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청소년기부터 익숙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 "여성시대", "싱글벙글 쇼"까지 듣게 되면서 듣는 노래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졌다. 한 때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팝송에 빠져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점점 더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리가 났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H.O.T'가 팬클럽을 몰고 다녔다. 대학생 때는 '박진영'과 'S.E.S'가 댄스가요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또 한때는 힙합문화가 대세가 되면서 펑퍼짐한 바짓가랑이로 온 동네를 쓸고 다녔다. 2002년에는 월드컵으로 광화문 광장을 빨갛게 물들였다. 최근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유튜브 1억 뷰와 BTS가 빌보드에서 1위를 하는 것까지 봤으니 나의 음악감상 스펙트럼은 넓을 수밖에 없다. 아! '베토벤바이러스'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도 심취하면서 나의 음악감상 범위는 점점 어마어마해져 갔다. 요즘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준 음악까지 듣다 보니 일본, 태국 노래까지 듣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부모님에게 선물로 받았다. 녹음 기능도 있어서, 지금은 저작권으로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라디오를 녹음해서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듣고 다녔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 친구들은 워크맨이다, 파나소닉이다, 일본 제품을 샀는데 녹음 기능은 없었으므로, 나는 나의 국산 제품이 최고였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전에는 큰 집 누나 방에 LP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이승철 "소녀시대", "마지막 콘서트"를 하루종일 들었다. 대학에서는 길거리에서 짬뽕 테이프를 많이 팔았는데,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항상 듣고 다녔다. 그러다가 과외알바로 돈을 벌면서 꿈에 그리던 CD플레이어를 사고, 군복무 시절에는 테이프값의 2배가 넘는 CD를 엄청 사모았다. 그 사이에 MD라는 것도 있었는데 나는 바로 MP3로 넘어갔다. 이때부터 저작권에 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부분 음악파일을 ‘소리바다’라는 P2P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들었는데, 불법이었다. 한동안 CD를 사서 MP3로 파일변환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팟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스트리밍으로 넘어온 것 같다. 요즘 다시 워크맨이 눈에 뜨이던데, 격세지감이다. 청소년들에게 카세트테이프가 신문물처럼 보이나 보다. 하긴 한동안 불었던 트로트 열풍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이런 시절을 지나 온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명곡이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이다. 좋아서 찾아 들은 것은 아니고 워낙 그 당시 인기가 있어서 TV만 틀면 나왔기 때문에 멜로디는 익숙해져서 귀에 박혔고, 가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곡의 흐름은 시간이 지나도 신기하게 안 잊혔다. 그래서 이래저래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이판사판 춤이 마냥 웃겼고, 표정이 워낙에 압권이라서 쇼킹하기까지 했다. ‘저런 가수가 이전에 있었나?’ 생각해 보면 심형래의 캐럴송 밖에 생각이 안 난다. “흰 눈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 지금 생각해도 절로 웃음 지어지는 그 캐럴송말이다. 그런데 정극 연기를 하는 연기자가 저런 표정과 춤으로 너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순간이면 나는 ‘세상은 요지경’ 번호를 눌렀다.


어렸을 때는 대중가요나 팝송 가사를 정말 내 맘대로 기억했다. 글렌 메데이로스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의 후렴구는 지금까지도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따라 랄라~ I love you!"이다. 비틀스의 'Yesterday'는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ed so far away~" 이후 역시 "따라리라~"이다. '세상은 요지경'도 가사 생각하지 않고 춤과 멜로디, 분위기에 취해 불렀는데, 자꾸 부르다 보니 가라앉아 있던 가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감상투 비틀어 쥐고, 할멈씨는 도망갔네~ 허허!"

처음에는 그냥 '한국어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던 가사의 뜻이 들리니 그렇게 웃긴 가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가 특히 심금을 울린 가사가 들렸는데...

"인생 살면 7, 80 화살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우와 기가 막힌다. 그렇게 전체 가사를 다시 들어보니 이것은 세대와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다 못해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퍼포먼스마저 희화한 겉모습 속에 숨은 깊은 뜻을 갖고 있다. 가수는 이판사판춤을 추고 있지만 표정만은 진지하고 무표정으로 '세상은 요지경'을 표현한다. 그래서 나에게 그렇게 쇼킹하게 다가왔나 보다. 그래서 내 인생의 최고의 명곡은 아직까지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은 요지경이다.


듣는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축복이지만, 얼마나 우리 사회의 속도가 빠른지 알려주는 것 같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시간의 속도에 삶의 속도를 맞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뒤처진다. 시간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멀어져 간다. 정말 화살같은 속도에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한숨과 한탄과 함께 시간을 앞서 보낸다. 그래도 음악은 놓칠 수 없다. 요즘 최애곡은 투바투의 'Sugar Rush Ride'이다. 아이돌의 칼군무가 그렇게 멋있어 보인다. 이 나이에 댄스학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리겠지? 뭐 어때? 세상은 요지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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