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영웅담을 원하던데...

어느 투지박약자의 고백

by 철없는박영감

요즘 인기 있는 이야기들을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 같다.

'괴물을 때려잡듯이 괴롭히던 직장 상사에게 무안을 주어 통쾌한 복수를 하고, 간신배 물리치 듯이 암유발자 동료를 함정에 빠트려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신이 내린 시련을 이겨내 듯이 버티고 버텨 결국에는 승리하리라와 같은 퇴사를 하고,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고...'

미노타우르스, 크라켄 같은 거대한 괴수들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영웅서사시 같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아무리 소소한 글이라도 결론은 깨달음, 반성, 극복, 성찰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듯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딱 중2병 수준의 권선징악, 사필귀정이 주제다. 그렇게 정말 부끄럽게 글 뒤에 숨어서 정의를 논하고, 철학을 논하고, 행복을 논한다. 그런데 세상에 영웅담은 넘쳐나는데 진짜 영웅은 안 보인다. PC방에 모여 5분마다 먼치킨 영웅을 탄생시키는 소년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왕 이렇게 양산형 영웅담 쓰게 된 김에 조금 더 반성해 본다. 영웅들은 엄청난 투지의 소유자들이다. 의지가 아니고 투지다. 특별한 능력을 각성하는 과정에는 의지가 작용하지만, 괴수나 악당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해내 추앙받는 영웅담은 그들의 투지가 발현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투지가 박약이다. 어려서부터 싸움이 날 것 같으면 피하고, 도망치고, 덮어버렸다. 날마다 싸우는 부모님을 보고 커서 그런 것 같다. 본인들은 싸우는 게 아니고 대화하는 거라고 하는데, 세상 그 누가 대화하면서 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악을 쓸까? 그놈의 술이 문제다. 어쨌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싸움이고 두 번째가 싸움구경이다. 직접 겪어서 그런지, 대립하는 두 사람의 자존심 대결 때문에 피해 보는 주변인들이 너무 안쓰럽다. 그래서 상대방의 잘못이라도 싸움을 걸어오거나 시비를 붙이면, 사전에 피하거나, 현장에서 도망치거나, 그냥 사과하고 덮어버린다. 그래서 투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크게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저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있겠거니...'하고 상대의 주장을 인정해 준다. 그리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는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뒤늦은 후회가 한 바가지 돌아온다. 그렇게 또 반성하고, 성찰하고, 깨닫는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재발하면 아마 또다시 집에서 뒤늦게 반성하고, 성찰하고, 깨닫고 있을 거다. 항상 후회 속에 살고 있을 것 같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런 후회가 도리어 마음 편하다. 내 주장을 관철시키겠다고 주변인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후회도 할 수 없어서 불편한 마음이 감당 안된다. 그렇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사람들은 겁쟁이, 비겁함, 용기 없음으로 매도하지만, 평화주의는 나의 의지이다. 그렇게 내 안에서 투지를 없애는 것이 나의 의지다. 간디의 마음이 이랬으려나?


어렸을 때, 엄마는 동네에 한 살 많은 형이랑 놀 때, 그냥 "야!"라고 반말하고 친구처럼 대하라고 부추겼다. 아니 강요했다. 덩치도 작은 게 형노릇하려고 하면 싸워 이기라고 했다. 그런데 투지가 전혀 없는 나는 '평화롭게 잘 놀고 있는데, 왜 그래야 하지? 왜 굳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지? 몇 달 차이 안나도 형은 형이고, 형대접 받고 싶어 하면 그냥 해줘도 큰 손해 없잖아. 내가 싸워 이겨서 얻는 게 뭐지?'라는 생각에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냥 그렇게 변화 없는 똑같은 모습에 굉장히 속상해했다. 아마도 그 부모와 무슨 문제가 있었겠거니라고 짐작할 뿐이다. 사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코걸이 귀걸이 식 훈육이 많았다. 저렇게 싸워 이기라고 하면서, 친동생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형으로써 항상 동생에게 양보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모순덩어리 훈육에 항상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초자 열혈남아'란 영화를 봤다. 나 같은 투지가 없는 사람이 나왔다. 의지만 있고 투지가 없는 사람이 아빠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줬다. 물론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결혼하면 안 되겠다'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자칭 '독신주의자'가 됐다. '비혼주의자', '비혼상태유지자'와는 거리가 멀다.


회사에서는 모순이 더 커졌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월급을 더 많이 받으려면 성과평가에서 싸워 이기고 높은 등급을 받아야 했다. 상사나 선배는 내가 필요하면 '우리가 남이가?'라고 했고, 필요 없으면 '나는 네 아빠가 아니야!'라고 했다. 투지 없는 평화주의자가 이용당하기 쉬운 데가 직장이었다. 연초에 팀원들이 모여 성과평가등급을 위한 회의를 했다. 그때 우리 팀은 성과평가를 팀원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해서 결정했는데 차장, 과장, 대리들이 좋은 등급을 다 가져가고 나에게는 'B-'등급을 남겼다. 이대로면 월급 삭감이다. 똑같이 일하고 혼자만 월급 삭감이 되게 넘어갈 수 없었다. 내 평가가 월급 삭감 등급으로 남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내가 일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이때부터 삶에 투지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팀원들을 붙잡고 이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렇게 다시 회의가 시작되고 결과적으로 팀원들 등급을 전부 끌어내리는 꼴이 되었다. 그 뒤로 따돌림은 당연히 따라왔다. 그래도 그러면서 바뀐 가치관에 연애도하고, 결혼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부서를 옮기고, 직장을 옮겨가며 커리어를 쌓고 연봉을 높이고 재산을 불려 가며, 관우에게 적토마가 있고, 페스세우스에게 페가수스가 있듯이, '라떼'라는 말을 타고 사람들 위에서 모순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던 삶을 살았다. 그것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층간 소음은 내가 돈 들여 꾸며놓은 궁전의 평화를 깨는 악당이었다. 윗집의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바로 뛰어 올라갔다. 운전습관은 거칠어져서 과속은 기본이고, 경로를 방해하는 저속차에게 하이빔을 쏘아댔다. 매일같이 사람들을 모아서 술자리를 만들고, 초대에 응하지 않는 동료는 배척했다. 기름지고 튀긴 음식들을 먹어대며, 먹다가 잠들기도 했다. 주말마다 백화점에 가서 홀린 듯이 카드할부를 긁었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신제품 가전을 사모았다. 주량은 계속 늘어 소주를 아무리 먹어도 안 취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필름이 끊겨 길바닥에서 누워 자고, 8차선 도로 위를 배회하고, 스마트폰은 10대 넘게 잃어버렸다. 다행히 대리운전 덕분에 음주운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잘 살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술자리에 친구들은 넘쳐났고,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도 벌었다. 그런데 호접지몽이었다. 몇 년간 일 년에 10kg씩 몸무게가 늘면서 건강검진 결과에는 이상신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술자리에 항상 넘쳐나던 친구들은 취기에 사소한 문제로 틀어져 원수를 졌다. 매달 카드 할부값을 메꾸느라 몇 년간 부은 적금을 깼다. 잘 사는 증거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에게 칼을 겨누게 되면서 정신을 번쩍 차렸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다시 투지를 없애고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생각하며 의지를 다졌다. 일없는 백수, 한량, 대책 없는 퇴사자로 매도당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봄의 맑은 날에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을 보며, 흩날리는 벚꽃 잎을 뒤로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마치고 와서,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커피를 한잔 마시며 책을 읽다가, 상큼하고 신선한 샐러드를 식빵 한 조각과 포만감 느낄 정도로 먹고, 소파에 앉아 TV를 켜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 행복해!"라는 말이 나왔다. 진심이었다. 모든 것이 행복했다. 내 이야기는 영웅담에서 한참 벗어나고 있지만, 나는 행복했다.


사실 처음시작은 영웅담을 양산해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보려던 얄팍한 생각이 있었다. 부인하지 않겠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표현이 입에서 나오면서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미래에는 돈 없는 불쌍한 백수 노총각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집에서 밥만 축내는 식충이 캥거루족 아들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흔 중반을 넘어가니 내가 생각한 만큼 내가 영웅이 될 이벤트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한 의지를 키울 것이다. 평화롭게 투지는 없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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