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팔렸다,

시원, 섭섭, 아쉽, 아깝, 묘하게 알 수 없는 마음

by 철없는박영감

봄과 여름사이, 초록색 풍경이 짙어지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동물친구들도 덩달아 활발해지는 시기. 근처 소나무 숲 공원에서 서식하고 있는 비둘기들이 아침마다 에어컨 실외기에 똥테러를 저지르기도 하고,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구구구구' 울음소리를 야하게 내기도 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방충망까지 활짝 열어젖혀 비둘기를 쫓는 일이 첫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똥테러도 없고,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별일이네...' 속으로 갸우뚱하면서 모처럼만에 찾아온 평온을 만끽하며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까치는 아닌 것 같은데,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베란다 난간에 앉아서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다른 곳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반가운 소식이라도 있으려나?'라며 은근히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기대를 갖는다. 기지개를 한번 크게 켜고,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아침조깅을 위해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밖으로 나와보니 평소보다 많이 늦은 시간이라서 공기가 많이 데워져 있다.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고 약간의 답답함마저 느껴져 뛰지 않고 걷기로 결정한다. 보폭을 최대한 넓혀 천천히 온몸의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낯선 전화번호가 찍힌 벨이 울린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이지만 070이 아니고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라서 받는다.

"여보세요?"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OO부동산이에요? 혹시 집 파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아니오 아직 안 팔렸어요."

"혹시 전세는 놓을 생각 없으세요?"


이미 회사생활을 끝낸 지 일 년이 되었다. 이곳에서의 내-일이 없어진 지 오래고, 양도소득세 면제를 위한 2년 실거주 의무도 올해 초로 끝났다. 엄마한테 생존신고를 위해 전화를 걸면 항상 "언제까지 거기서 살래? 돌아올 생각이 없는 거지?"라며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집이 팔려야 가죠."라며 은근히 이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사실 부동산에 집을 내놨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덕분에 조금은 마음 편히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부동산에서 온 연락이 전세는 어떻냐는 제안이다. 전세는 2년 뒤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고, 특히 집을 비우고 이사를 가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차라리 계속 여기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한다. 지금의 생활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도 한 몫한다. 전화를 끊고 산책을 마치고 샤워까지 끝내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래도 감감무소식보다는 전세제안이라도 받으니 오늘 아침 이름 모를 새가 진짜 새로운 소식을 물어다 주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을 먹고, 책을 읽다가 살짝 졸았는데 창밖에 또 새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짹짹' 지저귀기까지 한다. 나한테 일어나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듯이 들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래간만에 로봇청소기까지 동원해서 집청소를 한다. 침대 밑, 소파 밑은 청소기를 돌려도 청소가 잘 됐는지 확인이 안 되는데 로봇 청소기는 밑으로 들어가서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손님이 오실 때는 항상 로봇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바닥청소는 로봇청소기에 맡기고, 설거지 건조대에서 그릇들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어 넣고, 화장실 청소까지 마친다. 오랜만에 대청소로 기분이 더 좋아진다. 잠시 후, 부동산 번호로 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조금 싸게 팔 수 없냐고 한다. 사실 처음 집을 내놓을 때, 내가 의뢰한 가격보다 500만 원을 싸게 부동산에서 마음대로 낮춰서 인터넷에 올린 탓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500만 원을 싸게 내놓은 상태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 같아서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염치없게 지금보다 더 싸게 팔라고 못먹는 감 찔러보는 식으로 저렇게 말하니 괘씸해서 안된다고 거절한다. 사실 부동산에서는 매매 수수료로 0.5%를 받는데, 1000만 원이 오르락내리락해도 수수료로는 5만 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억 단위 변동이 아니고서는 부동산에서는 싸게라도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이득이다. 따라서 부동산은 절대 집주인 편이 아니다. 살짝 기분이 나빠져 있는데, 다시 부동산에서 전화가 온다. 집을 보러 오겠다고 한다. 바로 지금 30분 후에...


'새, 고 녀석 용하네...'라고 생각하며 부동산에게 괜찮다고 얼른 오라고 하고, 세수하고 양치질을 하고 마스크를 끼고 기다린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젊은 여자분과 엄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방문한다. 집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런데 젊은 여자분, 맨발이다. 집 보러 다니면서 남의 집에 올 때, 매너 없게 맨발로 다니다니... 애써 외면하고 편하게 보시라고 말하고 책을 본다. 회사를 오래 다녀서 10년 이상 살 거라고 예상하고 꾸며놓은 집이었다. 그런 집을 2년 만에 팔게 되었기 때문에 누가와도 자신 있었다. 사실 부동산도 집은 처음 방문이었다. 인터넷에 '집상태 확인'이라고 떠있는 문구는 믿으면 안 된다. 집 보러 온 사람뿐만 아니라 부동산도 실제로 와보고는 놀라서 이것저것 묻는다. '싱크대는 시트작업을 새로 한 거냐? 바닥장판은 집전체를 다 연결해서 깔았냐? 인덕션은 두고 간다고 들었는데 혹시 블라인드도 주고 갈 수 있냐?' 집 보는 동안 그림자처럼 조용히 책만 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새시에 맞춰서 전부 시트작업을 했고, 바닥도 문턱을 다 없애고 넓어 보이게 통일했으며, 오래 살 줄 알고 가스레인지를 걷어내고 인덕션을 놨는데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돼서 드리고 갈 거다. 그리고 블라인드도 전부 깔맞춤 한 거다. 블라인드도 놓고 가겠다'라고 대답한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열어보고, 틀어보더니 잘 봤다면서 집을 나선다. 집값 깎인 것도 기분 나쁜데 맨발로 와서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기고 가니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이러려고 오전이 그렇게 기분 좋게 흘러갔나 보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한번 쭉 닦고 나니 부동산에서 전화가 온다. 100만 원만 깎아달라고...


요 근래 엄마에게 생존신고를 잘 안 했는데, 전화를 받으면 '여보세요?'가 아니고 '집 팔렸다고?'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잔소리도 있고, 집은 임자가 나섰을 때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온지라. 부동산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그러자고 한다. 그리고 지금 부동산에 와서 계약서를 쓰자고 한다. 매수자는 가능한 한 빨리 들어오고 싶다며 이사를 2주 안에 해줄 것을 제시한다. 주택매매가 처음인 나는 잘 몰랐는데 통상적으로 집 비우는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2달은 본다고 한다. 보통은 3 달이고... 그런데 잘 몰랐던 나는 한 달을 달라고 하고 계약을 한다. 그리고 바보같이 준비가 더 빨라지면 더 빨리도 해보겠다고 한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속으로 '연휴도 있는데, 어떡하지? 그동안 너무 놀았다고 하늘에서 이제 일 좀 하라고 이런 계약을 하게 했나?'라고 생각하며 연휴기간 부모님과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려던 계획을 수정한다.


집 매매 계약을 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기분이 묘하다. 처음에는 팔려서 좋았는데, 점점 시원한 마음이 섭섭한 마음으로 바뀌더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잘한 거 맞나?'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뭔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들더니, 이내 집 팔기가 아까워진다. 행복하게 살려고 꾸며놓은 내 아방궁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정이 들어서 그런가'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결이 다르다. 아까워서 약 오른다가 더 맞는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이 묘해진 알 수 없는 마음의 정체를 모르겠다. 어쨌든 진짜 물이 엎질러졌다. 얼른 부모님이 계신 경기도로 가서 새 보금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반강제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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