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암기는 다르던데...

그리고 추억

by 철없는박영감

해시태그에 '#의지'를 적어놓고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의도는 '의지 = 依支 = Lean'인데, 글자만 뚝 떨어뜨려 생각하면 '의지 = 意志 = Will'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된다. 그래서 '#Lean'을 같이 적어놓기는 했는데, '글자로 둘을 어떻게 구별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에는 장단음이 있어서 '의지 = 依支 = Lean'이고 '의:지 = 意志 = Will'로 구별이 가능하다. 그런데 글자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한자를 병용하는 수밖에... 요즘 한자 1~10을 못 읽는 사람이 많다던데... 대부분 '의지하다'라는 동사형으로 많이 쓰니까 문맥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해시태그로 쓰기에는 부적절한 단어 같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린다. 그러다가 예전부터 생각으로만 고찰하던 단어가 떠올랐다. '기억, 암기, 그리고 추억'

기억 (記憶) : 명사, 접미사 '~하다'가 붙어서 동사가 되는 말. 지난 일을 잊지 아니함. 또는 그 내용.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
암기 (暗記) : 명사, 접미사 '~하다'가 붙어서 동사가 되는 말. 외워 잊지 않음.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
추억 (追憶) : 명사, 접미사 '~하다'가 붙어서 동사가 되는 말.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제6판]

먼저 기억과 암기는 비슷한 듯 다르다. 국어사전을 뇌피셜로 해석하자면 둘 다 잊지 않음을 뜻하지만, '기억'은 '암기'에 비해 수동적이고, 시간을 내포하고 있으며 영속적이다. 그리고 '기억'은 '암기'에 비해 핵심보다는 주변 분위기, 상황이나 환경이 주인공이다. 다만 '기억'을 능동적으로 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부여돼서 강한 의지가 느껴지고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기억하겠어!"라는 말은 힘이 느껴진다.


추억은 기억과 비슷한 듯 다르다. 둘 다 지난 일을 생각하지만 '추억'은 '기억'에 비해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래서 꾸며지기도 하고, 필터링이 추가되어 뽀샤시하게 느껴지고, 반짝반짝하다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머리보다는 가슴에 더 영향을 끼친다. 가끔은 소환하기보다 가슴속에 묻어둬야 할 경우도 있고,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면서도 나이 들었음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구전되는 전설같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현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기도 한다.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산수 시간에 선생님이 구구단 암기 숙제를 검사하고 있었다. "이일은 이, 이이사, 이삼육, 이사팔,..." 운율에 맞춰 반전체가 음악시간에 노래 부르는 것처럼 구구단을 외웠다. 2단부터 9단까지, 이 정도 암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유치원 때부터 암기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다.


유치원 봄방학이었던 것 같다. 졸업식을 앞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엄마가 개다리소반 위에 아끼던 커피잔으로 차를 내오면서 두 분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대화가 끝나고 '선생님 가신다!'라는 엄마의 외침에 현관에 나와 배웅하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선생님이 떠난 자리에는 글씨가 빼곡히 쓰여있는 커다란 전지(全紙)가 남아있었다. 제일 위에는 '답사'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선생님이 전지에 써온 '답사'를 거실 한쪽 벽에 붙여놓고 암기하기 시작했다. "졸업생 대표 아무개!"라고 사회자가 호명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인사를 꾸벅하고 "답싸! 이 자리를... 어쩌고 저쩌고!"라고 답사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앉는 것 까지가 내 역할이었다. 힘들지는 않았다. 쉽게 외워졌고 일단 인사하고 "답싸!"라는 단어가 뒤이어 나오면 트리거가 되어 뒷 말은 디폴트처럼 자동으로 따라 나왔다. 얼마나 연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답싸! 이 자리를... 어쩌고 저쩌고!" 자다가도 푹 찌르면 일어나서 바로 "답싸! 이 자리를... 어쩌고 저쩌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웠던 것 같다.


졸업식날이 되었다. 가족들, 선생님들, 사진사 아저씨, 원장 신부님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답사를 하기 위해 오른쪽 제일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됐고, 사회자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관객들을 향해 섰다. 그리고 인사를 꾸벅하는 순간!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유치원 졸업생에게 학사모와 학사가운을 입혔다. 그래서 친구네 놀러 가면 거의 모든 집에 학사모를 쓴 형, 누나들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걸려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학사모와 학사가운을 입었다. 답사를 하려고 앞에 서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순간 고무줄로 턱에 고정시킨 학사모가 얼굴 앞으로 쏟아지며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얼굴을 가리는 NG가 났다. 7살짜리 남자아이의 귀여운 실수에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나는 다시 인사를 시도했으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어렸지만 쇼맨십은 있어서 사람들이 웃어주고 손뼉 쳐주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인사하고 "답싸!"를 해야 다음 말들이 주르륵 나오는데, 인사가 막히니 "답싸!"가 안 나왔고, "답싸!"가 안 나오니 "이 자리를... 어쩌고 저쩌고!"를 시작할 수 없었다. 트리거가 없어진 것이다. 다행히 눈치 빠른 선생님이 모자를 벗겨버리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전지에 써준 대로 답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하고 내려왔다. 그때 암기했던 '답사'는 앞부분 '이 자리를...'을 빼고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학사모가 얼굴을 가린 일, 그때의 상황, 유치원 교실 분위기, 내가 입었던 옷 같은 것들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구구단 암기 숙제를 완벽하게 암기했다고 자부하던 나는 학사모가 얼굴을 가린 것 같은 예측 불허의 사건으로 앞이 깜깜해졌다. 선생님이 갑자기 한 명씩 랜덤으로 구구단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을 통과 못하면 나머지 공부다. 선생님이 한 명씩 "육사?" 하면 "이십사"라고 대답을 해야 통과였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일은 이"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당시에는 이건 숙제가 아니었는데라며 울고불고 불평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깜찍한 반항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 공부를 했고, 억울한 마음이 더 커서 하기 싫었다. 같이 나머지 공부 하던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통과하고 집에 가는데, 억울함과 반항심에 선생님에게 마지막까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숙제가 아니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금 생각하면 쪼그만 게 반항도 하고 꽤 귀여웠다. 어쨌든 통과 못하면 집에 못 가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암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암기과목에 대한 반감은 이 기억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구단 암기 숙제를 검사받던 교실에서 내가 앉았던 자리, 선생님의 표정, 테스트에 통과해서 자랑스러워하던 친구들의 표정, 집에 돌아가던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울고불고 억울해하던 것이 다 기억난다. 그리고 지금은 뿌옇게 필터링이 걸려 찬란하게 추억되고, 그 시절이 그립고 아련해서 먹먹해지기도 한다.


암기는 싫었고, 기억은 좋은 것, 싫은 것이 공존했고, 추억은 좋은 것만 남았다. 점점 체에 걸러진 느낌이다.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만들었던 단어암기가 그렇게 싫었는데, 'Latitude : 위도'라는 단어였다. 신입사원 연수시절 받은 첫 회사 노트북 이름이 'Latitude'였다. 노트북을 처음 받고 외관을 살피면서 혼잣말로 'Latitude가 무슨 뜻이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아니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 안 되던 시절이었다. 옆에 서울대 나온 동기가 자기도 모르게 "위도"라고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아마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주변에서 많이 물어봤을 것이다. 동기가 무의식적으로 혼잣말로 대답했다. 그래서 'Latitude'라는 단어는 암기하지 않아도 기억나고 연수원에서의 추억까지 생각나게 한다. 기억은 암기보다 강력해서 더 오랫동안 잊지 않게 해 준다. 그리고 추억은 기억을 왜곡해서라도 영원히 아름답게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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