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꾸지(borrow) 말고 꾸기(dream)

간결해지기 (마지막)

by 철없는박영감
오늘도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는 당신에게...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현금서비스, 대출... 신용사회에서 미래를 저당 잡히는 무수한 방법이 쏟아지고 있다.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살아야 희망도 생기고 보람도 있을 텐데... 미래를 팔아넘기는 방법이 쉬워지니 월급통장은 '텅장'이 되다 못해 마이너스된 금액에 이자가 붙고, 언제 긁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할부값은 도둑맞은 기분이다. 미래는 회색빛이다.


어버이날에 허리가 불편한 부모님을 위해 안마의자를 사드렸다. TV광고처럼 부모님이 안마의자에 앉아 편안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상상하며 수백만 원짜리를 질렀다. 제휴카드 렌털 서비스라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제휴카드를 신규로 발급받아 한 달에 일정금액 이상 카드결제를 하면 할인해 주는 식이었다.


매달 나가는 카드값이 훨씬 많았기에 실적 채우기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할인되는 실적까지만 쓰겠다던 계획은 목표금액의 2~3배를 훌쩍 넘는 것은 기본이요, 계약기간의 절반도 지나지 않아 안마의자는 옷걸이가 되다 못해 자리만 차지하는 거대한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먼지만 쌓여갔다.


간결하게 살기로 하고 소비가 확 줄은 지금도 카드 실적은 맞춰야지 라는 생각에 각 종 공과금을 카드결제로 돌렸는데... 하하하 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계약서 쩌~어~기 어느 한 곳에 작은 글씨로 공과금은 실적에 포함이 안된다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카드사들은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


허영 : 상상 → 공상 → 망상 → 망하는 지름길


보너스를 받은 달... 아... 얼마만의 보너스인지... 그동안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 월급에 쪼들리며 힘들게 살아온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overspendig('과소비'라고 쓰고 싶지 않다. 왠지 죄짓는 기분이 든다)의 시나리오다. 돈은 엄마한테 맡기고 용돈 받아 쓸 걸 그랬다고 후회해도 이미 20년을 늦었다.


들뜬 마음으로 인터넷 명품쇼핑몰에 접속했다. 백화점 명품관은 언감생심, 입고 갈 옷도 없다. 그래도 명품이라는 것은 한번 가져보고 싶어서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음... 청자켓이 보인다. 명품을 입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디자인도 그렇고, 로고도 크게 쾅 박혀있는 게 명품티도 확 난다. 내 것이 되려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아이 같다. 지금 옷장에 없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청자켓 하나에 백만 원... 훗! 결제버튼을 누른다. 신용카드? 할부? 필요 없다. 나에게는 보너스가 있다. 통장에서 바로 빠져나가도록 체크카드로 결제한다. 마지막 양심이다. 순식간에 보너스 1/3이 없어졌다. 아~ 배송되는 동안 온갖 공상을 한다. 집에 있는 옷들과 매칭도 해본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코디가 떠오르지 않는다. 액세서리라고는 한 번도 사본적이 없는데... 패션 화보를 참조하며 이것저것 비슷해 보이는 목걸이, 팔찌, 반지를 샀다. 신발도 샀다. 받쳐 입을 셔츠도 샀다. 결국 바지도 샀다. 보너스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도착한 명품 청자켓은 마음에 쏙 들었다. 상상하던 그대로이다. 이제는 공상을 실현할 시간이다. 이 청자켓 하나 때문에 사모은 옷, 신발, 액세서리를 착장 해본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망상에 빠진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런데 워낙에 안 입던 스타일이라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쳐다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거울 속 모습이 피에로 같이 느껴진다. 문 밖으로 나갈 용기가 안 난다. 스스로 갇혔다.


현실을 살자. 간결해지는 최선의 방법이다.


* 지은이 인사 : 열 번에 걸친 "간결해지기"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획은 힘 빼고 설렁설렁 쓰기 시작한 건데, 지금까지 중 가장 큰 반응이 와서 2주간 진짜 행복했네요. 다음 주부터는 다른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주시고, 라이킷도 눌러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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