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정의감

내 인생의 짧은 奇談들… (7)

by 철없는박영감

※ 주의 : 100% real 제가 겪은 실화입니다.

어느 맑은 날


공무원 시험을 집에서 준비하며 동네 독서실을 다녔다. 시립 도서관에 다니다가 자리 때문에 시비가 붙고 나서는 가기 싫어졌다. 요즘이야 자리 예약도 하고... 번호표도 뽑고... 배정받아서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먼저 와서 차지하는 놈이 임자였다. 카공족이 많아서인지 열람실 자체에 사람이 없는 요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어쨌든 6명이 앉을 수 있는 칸막이 없는 자리에 책 한 권씩 올려놓고 아무도 없는 빈 책상을 보고 있으니... 헛걸음질하고 돌아갔을 사람들 생각에 부하가 치밀었다. 어릴 때라 그런지 꼬장을 좀 부리고 싶었다. 일부러 책을 치우고 앉았다. 잠시 후, 시시덕대며 남녀 커플이 들어와서는 자기들이 맡아놓은 자리에 웬 놈이 떡하니 앉아있으니 황당했나 보다. 앉아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커플 중 여자가 포스트잇을 쓱 내밀었다.


『저기, 죄송한데, 아침 일찍 와서 맡은 자린인데, 비켜주세요.』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쪽지를 보았지만 못 본 척 쓱 옆으로 밀어 떨어트리고 할 일에 집중했다. 잠시 후, 여자가 말을 걸아왔다. 자리 주인 왔다고... 그런데 공부하러 왔다는 사람이 책 한 권도, 필기구도 없이 맨 몸으로 왔길래... 조용히 '공부나 합시다!'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남자가 발끈해서 다가오더니 멱살을 잡았다.


정숙해야 할 열람실에 갑자기 소란이 일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꼬장 제대로 부려볼까 하다가 잘한 게 없는 것은 매한가지여서... 조용히 데리고 나와 안내 데스크 사서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요즘은 사진 찍어서 민원 넣는다지만, 그때는 맨투맨으로 신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명을 들은 사서는 난처해했다. 우물쭈물하길래... '참! 사서도 못할 짓이다' 싶어서 그냥 짐을 싸서 돌아왔지만, 기분은 많이 언짢았다.


나오면서 보니 결국 그 6명 자리에 둘이서 옆으로 붙어 앉아 나머지 4자리를 '메롱'으로 만들고 있던데... 참 대단한 커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어렸다. 왜 그랬을까? 옆에 빈자리도 많았는데... 요즘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며 각을 세우는 것을 보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역사도 승자의 기록... 원리, 원칙도 승자의 논리... 정의도 승자의 의지...'라서 그런가...?


그 커플의 남자는 수험서로 봐서는 경찰공무원 준비하는 것 같던데... 그런 애가 합격하지는 않았겠지? 합격했다면 그때 잘못한 만큼 '민중의 지팡이' 역할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네...


야! 그때 그놈! 부러지거나 부러뜨리면 안 된다... 민중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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