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짧은 奇談들… (9)
※ 주의 : 100% real 제가 겪은 실화입니다.
장난
요즘이야 바닥 신호등이라는 신박한 발명품으로 교차로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딴 데 신경 쓰다가 무심코 무단횡단하는 경우가 적지만, 예전에는 분명히 보행신호가 빨간불인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옆에서 다리 하나라도 뻗을라 치면 무심결에 같이 튀어나가 사고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린애들은 치기 어린 호기심으로 사람들의 이런 습성을 이용해서 자주 신호등에서 장난을 쳤다.
"봐! 봐! 봐! 내가 건너는 척만 해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간다.. 잘 봐! 봐! 에잇!"
꼬맹이의 이런 장난에 어른 몇 명이 걸려들어 건너려고 하다가 지나가는 차의 경적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면 장난의 주범들은 깔깔거리며 성공을 자축했다. 꼭 꼬맹이뿐만 아니라 일부 덜 성숙한 어른아이들도 비슷한 장난질을 했었다. (내 군대 동기...)
신호등뿐만 아니라, 처음 가는 낯선 장소에서 꼬맹이들은 장난으로 지나가는 모르는 어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봐! 봐! 봐!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해도 잘 받아준다... 잘 봐! 봐! 에잇!"
안녕하세요!
그러면 또 몇몇 바빠서 정신없는 어른들은 '어! 오랜만이다!'라는 추임새까지 섞어가며 반갑게 인사해 줬다. 아마 지나가고 나서는 '쟤가 누구였더라?' 아니면,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을 수도... 꼬맹이들은 그런 장난을 놀이로 즐겼다.
관중효과... 군중심리... 남을 의식하는 행위는 전염이 잘 된다. 특히 낯선 곳, 잘 모르는 분야에 놓이면 더 그렇게 된다. 한 10년 전쯤, 오케스트라에 푹 빠져있던 적이 있다. 여러 악기들이 화음을 이뤄 하나의 곡을 연주하면, 한 데 모인 울림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듯한 쾌감이 어마어마했다.
'한러수교 몇 주년' 이러면서 러시아 쪽 오케스트라였는데... 타이틀 때문인지 유명인사, 정치인들이 많이 보였다. '故앙드레 김'도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위아래 하얀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유명한 공연이고, 한 카드사가 후원을 하며 초대장을 많이 뿌렸는지, 어린이 관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언제... 언제... 언제 쳐? 박수...
1부 피아노 콘체르토가 시작되고, 너무 좋아하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이 연주되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협주곡 1악장이 끝나고 바로 옆에 앉아있던 여자아이가 혼자 박수를 '짝짝' 치기 시작했다. 같이 온 보호자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낚아챘지만, '언제 쳐야 하나...'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며 준비하고 있었는지 박수는 삽시간에 공연장 전체로 전염됐다.
이후 모든 악장마다 박수가 터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는 '브라보'를 외치기도 했다. 클래식 문외한인 나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데, 인터미션 사이에 유명인사들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스케줄이 바빴을 수도 있고... 눈에 띄던 하얀 옷도 사라졌다. 연주자들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겉으로 초연해 보였지만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래도 관객들은 처음 보는 공연에 좋은 추억을 남겼겠지... 나는 빼고...
잠시 후, 2부 시작 전... 안내방송이 나왔다. 박수는 지휘자가 돌아서면 그때 치라고... 이런 안내 방송은 처음 들었다. 보통 공연에 가면 지휘자가 돌아서기 전... 연주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께 '브라보', 환호성이 터지기 마련이다. 연주하느라 고생했다고... 근사한 연주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끝남과 동시에 다 함께 터트리는 환호성은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을 보는 듯 짜릿하다. 하지만 안내 방송이 무색하게 전염은 예방되지 않았다.
모를 땐 가만있는 게... 중간이라도 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