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 (6)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쓰다 보니 등골브레이커 연대기라기보다는 가전제품 변천사가 된 것 같다. 어쨌든 얼리어답터 기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는 중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좀 산다는? 아니면 좀 논다는? 친구들은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듯 특이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일진이라면 일진인데... 우리 학교 일진들은 착했다. 친구를 괴롭히거나 빵셔틀 같은 거 없이, 같이 잘 어울려 놀았다.
그때 그 복색을 다시 떠올려 보자면, 레옹머리에, 슬림보다 스키니에 가까운 다리에 딱 달라붙는 교복 바지, 신발은... 구두는 구두인데, 옛날 무성영화시대 찰리 채플린처럼 앞코가 불룩 튀어나온,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모양의 구두를 신고 다녔다. 더비 슈즈라고 하던가? 하여튼 자기 발보다 10㎝는 족히 더 클 것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 그래서 걸을 때마다 앞코가 덜렁거리며 길바닥을 찰싹찰싹 때리고 다니는 신발이었다. 이스트 팩 가방을 등에 딱 달라붙게 메고, 그리고 '삐삐'를 갖고 다녔다.
이것에 꽂혀 버렸다. 정확히는 '무선호출기', 영어로는 'pager'.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7시부터 10시까지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 애가 무슨 삐삐가 필요하겠냐마는 그야말로 '그냥' 갖고 싶었다. 허리에 차거나, 아니면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그 작은 기계가... 앉아서도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이 드는 그 작은 기계가... 소유욕을 자극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에게, 아니 당시의 '나'에게 정말 쓸모가 1도 없었던 것을 사달라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게 왜 필요한데? 그걸 어디다 쓰게?"
"그냥 갖고 다니게요..."
이건 아니지... 안 그래도 먼 데로 학교 다닌다고, 남자가 밖에서 돈 없으면 모양 빠진다고, 매일 만원씩, 오천 원씩 수중에 있는 돈을 전부 쥐어 주셨던 부모님이다. 그때는 나름 큰 액수였는데, 부모님은 허리띠를 졸라가며 매일 그렇게 용돈 안 떨어졌냐며 손에 쥐어 주셨다. 아~ 그때 그 돈들을 차고 차곡 잘 모았어야 하는데...
날라리? 말괄량이?
그런데 방법을 찾았다. 삐삐를 가질 수 있는... 그때 통학버스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고 다녔는데... 몇 달 가만히 들어보니, 사연을 보내 채택된 사람이 'XX생일인데 삐삐를 선물하고 싶어요'라고 하면, DJ들이 'OO에 사시는 XX 씨에게 **社에서 제공하는 카드식 무선호출기를 선물로 보내드립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옳다구나! 이거다' 싶어서 동생을 팔아 사연을 보냈다. 물론 마지막에 삐삐를 선물하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약 한 달 뒤, 방송국에서 은혜롭게 손에 삐삐룰 쥐어 주었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했던, 통학버스를 같이 타고 다녔던 친구들을 통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반에... 학교 전체에... 학부형들 사이에... 그렇게 점점 온 동네에 퍼지다가... 결국 '날라리'로 낙인찍혔다. 물론 레옹머리 했고, 교복바지 수선했고, 더비 슈즈 신었고, 이스트팩 멨다. 삐삐를 갖고 나니 거기에 하나씩 맞춰가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다.
그 뒤로, 사춘기 소년은 이어폰을 꽂고 공부를 하는 건지, 노래를 듣는 건지... 공부는 뒷전이고, 랩가사만 줄곧 외우고 앉았고... 점점 외모에 관심을 가지며, 꼴에 아이돌 따라 한다고 춤 배우고, 동대문 '프레야 타운', '밀리오레'에 가서 바가지 쓰고 오고... 옷 좀 싸게 산다고 새벽 도매시장에서 날밤 새고... 걱정시키기 딱 좋은 짓들만 골라하고 다녔다. 그 와중에 전에 썼던 '잘못된 만남'사건까지 있었으니... 부모님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이불킥 감인 짓들만 했네...
그런데 날라리는 아닌데... 그냥 트렌드에 쪼끔 민감했던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