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 (7)
달님은 소원을 들어주었다.
1996년 97학번들이 치른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은 극악의 난이도로 역대 최악의 '불수능'이라는 악명을 떨쳤었다. 그리고 1997년 고3 수험생이 되어 '포천중문의대'를 목표로 했다. 모든 경비를 학교에서 내주는 획기적인 전문의과대학이었다. 커트라인인 340점을 맞기 위해 정말 열심히 온 힘을 쏟아부어 공부를 했다. 새벽에 공부하다가 하숙집 창문으로 달님이 나타나면 340점만 맞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소원은 이뤄졌다.
하지만 전년도 '불수능'의 악명을 씻으려는 듯 97년도 수능결과는 중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모의고사보다 적게는 10점 많게는 몇십 점씩 오르며 변별력 조절에 완전히 실패해 버렸다. 어쩜 달님이 이리도 야속하던지... 상향 평준화로 커트라인이 오르고 비슷한 점수대의 경쟁자가 많아지면서 목표하던 학교는 갈 수 없었다. 지방의 사립 의대는 갈 수 있었지만, 학비가 어마어마했고, 무조건 'in 서울'을 외치던 시기이다.
하지만 실망할 때가 아니었다. 입시 전략을 다시 짜야했다. 그때 받아보던 'A+'라는 학습지에서 배포해 준 가나다라군별 대학 목록과 커트라인을 보면서 지원할 학교와 학과를 정하고, 교보문고에 가서 입학원서를 사 왔다.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지원 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교를 못 간 것이 한이 된 엄마를 모시고 여러 학교 캠퍼스 구경하며 같이 원서를 넣으러 다녔다.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새내기의 패기 좀 보소
그렇게 2 지망으로 원하던 유전공학 관련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BK21'이라면서 나라에서도 많이 지원하는 전도유망한 학과였는데... 군대에 갔다 와서 '황우석 박사' 사건이 터지면서 폭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쨌든, 여차저차 논술도 보고, 면접도 보고 결과적으로 98학번 새내기 OT가 열리는 수련원으로 가는 버스에 타고 있었다.
지금이야 버스에서 안전벨트도 메야하고,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서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미개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일명 '관광버스춤'이라고 일컬어지는 손을 앞으로 뻗고 어깨를 들썩이는 이상한 춤을 추며 버스가 들썩일 정도로 버스 안에서 술을 마시고 춤추며 놀러 가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수학여행이나 이런 OT에서도 마찬가지로 춤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명씩 나와 버스에 있는 마이크로 노래를 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 명 한 명 학번 순서대로 호명되어 나와 신고식을 빙자한 새내기들의 재롱잔치가 버스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는 노래는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노래는 많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난한 '소양강 처녀'나 부르고 와야겠다 했는데... 앗! 내 앞 앞 순서의 한 동기가 불러버렸다. 이런... 이런...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졌다. 어쩌지? 어쩌지? 똑같은 걸 불러도 되나? 그것도 조금 전에 불렀던 노래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버스 마이크를 들고 선 나는 괜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한지 기억도 안나는 이상한 멘트를 날리면서 시간을 끌다가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해 저문~'을 시작하자마자 뒷자리 92학번 선배들이 난리가 났다. '저 삐리리 내려서 뛰어오라고 해'부터, '내가 만만해 보여'까지... 얼굴은 새 빨게 지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리고 번뜩 생각난 노래가 있어서 불렀다.
"별 빛이 흐르는..."
한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더니, 이번엔 동기들마저 '쟤가 미쳤나?'라는 표정이 되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선배들에게서 일제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들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동시에 한꺼번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쌍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조용히 사회자 형이 다가와 귓속말로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그렇게 K대 OT에 가서 라이벌 Y대 응원가를 부른 천인공노할 새내기가 되었다.
이쁨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학교 생활은 '관종기'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기숙사에 안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요...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날마다 과방에서 먹고 자는 쓰레기 생활을 하는 괴짜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도통 연락이 안 되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는지 삐삐 음성사서함에는, 절대 그럴 리 없는 동생의 음성메시지까지 와 있었다. 집에 연락 좀 하라고...
연락을 잘 못하는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숙사에 공중전화는 삐삐 음성메시지 확인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고, 멀리 나가려고 해도 10시 이후에는 나갈 수 없고, 학교 기숙사에는 일명 '정력계단'이라고 하는 어마무시한 계단이 있어서 한번 갔다 오면 진이 빠져서 엄두가 안 난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리고 2학기 시작과 동시에 내 손에는 PCS가 들려있었다. 사주면 앞으로 연락 잘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 기숙사에서 쫓겨났다.
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