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브레이커 연대기 (2003년)

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 (8)

by 철없는박영감
인생의 암흑기


남자는 살면서 환경이 확 바뀌는 순간이 있는데... 가장 큰 변화가 바로 군입대이다. 남자의 일생에서 시기에 따라 위계질서를 결정하는 깡패들이 있는데, 고등학교까지는 나이가 깡패다. 학년에 따라 엄격하게 선후배가 나뉜다. 대학에서는 재수생들이 생기면서 학번이 깡패다. 군대 이후로는 계급 혹은 직급이라는 이전의 질서를 깡그리 뒤집어버리는 강력한 깡패가 등장한다. 그리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달으며 철이 든다.


2003년 전역을 하고 뭘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학과 동기, 선후배들은 거의 경제, 경영학 복수전공으로 썰물 빠지듯이 싹 빠져나갔고, 몇몇은 어학연수네... 유학이네... 아예 한국을 떠났다. 진짜 금수저들은 백으로 이미 공기업이나 은행권에 내정되었고, 부모님의 사업체를 이어받는 이들도 꽤 있었다. 이 때는 취업 걱정 없는 친구들이 정말 너무 부러웠다.


대학원을 갈까도 고민했다. 지도교수님도 은근히 실험실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2000년에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집에 수입이 갑자기 확 줄어들면서 부모님은 만 원짜리 한 장 쓰는데도 손을 벌벌 떨어야 했다. 지금도 엄마는 그때 엄청 추운 날 붕어빵 사 먹을 돈 천 원이 없어서 서러웠던 이야기를 한다. 얼른 든든한 직장을 구해서 빨리 집에 돈이 돌게 수혈 해야겠다 생각했다.


빠지다


구직을 하기에는 스펙이 한참 부족한 데다, 여태까지 열심히 해본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었던지라 자연스럽게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공시생은 고3 수험생과는 천지차이였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마음이 가난해진 것이다. 좁아터진 강의실에 수백 명을 한꺼번에 몰아넣으니 닭장도 이런 닭장이 없었다. 자습실, 도서관은 아침마다 치열한 자리 맡기 경쟁으로 진이 빠지게 했다.


인생이 암흑 속으로 몰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나날이 커지며, 자존감은 끝도 없이 추락했다.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공시생 생활은 2년, 3년... 휴학기간을 꽉 채워가고 있었다. 마지막 1년은 7급에서 9급으로 전향해서 지원해 봤지만 한두 개만 틀려도 불합격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이 점점 허무해졌다. 그리고 삶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싶다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요즘으로 따지며 '인스타그램', 그때로 따지면 '싸이월드'에 빠지며 한 컷 속의 환상에 살기 시작했다. 일촌들의 사진을 보며 부러움, 시기,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지금 생각해도 미쳤지...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나도... 나도... 나도...'를 외치며 수십만 원 상당의 디지털카메라를 질렀다. 부모님이 차비로 쓰라고 주신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그리고 빠졌다.


이미 넘쳐나는 아웃백 '부쉬맨 브래드', '투움바 파스타' 사진 찍기에 동참했고, 여기저기 사람들을 따라다 다니며 유명 관광지나 명소 속에 있는 행복한 표정의 나를 찍었다. 하다 하다 '사필귀정', '손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 같은 온갖 설정샷을 찍어 올렸고, '이 어둠을 지나면 밝은 빛이...'라며 터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부모님은 피눈물을 흘리셨다... 이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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