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야 방귀야 (4)
복불복 (福不福) : 걸리기만 해! 아주 그냥!
한 때 술자리에서 이런 놀이가 유행한 적 있다. 계산할 때, 신용카드를 거둬서 사장님께 제시하며 '마음에 드는 카드로 결제해 주세요'하는 일명 몰빵, 몰아주기. 그래서 노란색 카드가 싹 없어지기도 했다. 걸리면 독박쓰고, 안 걸리면 공짜고... 이전에도 당구, 볼링 등 각종 술값 내기 놀이, 고백점프, 삼육구 등 술 마시기 놀이는 심하게 말하면 사행성 도박과도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이상한 건 항상 걸리는 사람만 계속 걸렸다.
남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술자리 놀이를 보고 있으면, 까나리 액젓과 커피를 한 데 섞어놓고 골라마시게 해서 출연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재밌게 봤던 프로가 떠올랐다. '방송에서 10년 넘게 유행하는 형식(form)이 그대로 사회에 반영됐나? 아니면 개인주의, 이기주의 사회상을 재빠르게 반영한 것이 인기를 끈 건가?' 사실 벌칙 받는 출연자의 불복에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복불복 게임이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1박 2일에서 복불복 게임이 끝난 후 운 좋게 벌칙에 걸리지 않은 멤버들이 "복불복이여 영원하라~",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것이 인터넷 밈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남의 손해에 무관심한 현상을 전문 사회학적 용어로 노비즘(Nobyism) 현상이라 부른다.
1박 2일에서 처음으로 이 말을 한 인물은 초창기 멤버였던 노홍철이다. 전주 편 복불복에서 실내취침에 당첨된 것을 자축하는 멘트였다. 무한도전의 무한이기주의를 1박 2일에 이식한 것인데, 노홍철이 하차한 후로도 강호동이 이 말을 많이 사용하며 명맥을 잇는다. 강호동은 이때 벌칙에 걸린 멤버들을 약 올리기 위해 괴상한 표정에 온갖 오버 액션까지 더해 가면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곤 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짤방으로 남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 타사 예능 프로인 무한도전의 무한이기주의가 나만 살려고 돌발행동을 하는 난장판 상황까지도 포함한 의미라면, '나만 아니면 돼'는 그 상황에서 승리한 자의 자축임과 동시에 패배자들의 어그로를 끄는 대사인 것.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약간 바뀌었는데, 원래는 본인이 '살아남은' 상황에서 자축을 하는 식으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남에게 불행한 일이 찾아왔을 때 난 멀쩡하다며 조롱하는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쉽게 말해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예를 들어 유명인이 악플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기사가 나오면, 악플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댓글로 '나만 아니면 돼'를 달면서 고소당할 사람들을 조롱하는 식이다. 딱 이런 상황을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이 강 건너 불구경.
[출처 : 나무위키 "복불복"]
이웃이나 사회에 피해가 되더라도 자기에게 바로 손해가 오지 않는 일에는 무관심한 현상을 말한다. 즉 공공장소나 도로 등에 쓰레기를 버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지만 내 집 뜰에 버리는 것만은 못 봐주겠다는 것으로 철저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사고로 님비 현상이나 바나나현상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님비(NIMBY) 현상은 `Not In My Backyard`라는 구절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로 만든 신조어로,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라는 이기주의적 의미로 통용된다. 즉, 핵폐기물 처리장, 쓰레기 소각장, 분뇨 처리장, 화장장, 교도소, 마약 퇴치 센터 같은 시설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이러한 시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경우다.
바나나(BANANA) 현상은 ‘우리 동네 근처에는 어디에라도 절대 아무것도 짓지 말라(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는 집단 이기주의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유해 시설의 설치 자체를 반대한다.
이와 반대로 핌피(PIMFY) 현상은 `제발 우리 집 앞마당에 지어 달라(Please In My Front Yard)`는 뜻에서 생긴 신조어이다. 금전적 이익이 예상되는 지역의 개발이나 시설 입지 등의 문제를 놓고 지역 간에 벌이는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비즘 [nobyism] (매일경제, 매경닷컴)
재방, 삼방을 넘어 정주행 채널까지 생긴 김태호, 나영석으로 대변되는 '무한도전', '1박 2일'은 지금 보면 굉장히 불편한 부분이 많다. 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물이겠지만,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시대상을 널리 퍼트린 장본인이 아니었을까?
공동운명체? 운명공동체?
재미 지상주의의 방송가는 나날이 변화해서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불편한 시선들이 점점 이탈하게 되자 새로운 형식(form)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공동운명체로 포장해 사람을 모아놓고, 운명공동체로 전락시키는 형식(form)"
공동운명체 : 둘 이상의 사람이나 단체가 협력하여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이끌어 가는 유기체적 존재.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공동운명체"]
운명공동체 :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같이하는 집단 또는 사회.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운명공동체"]
여기서도 재미와 스포츠정신으로 포장한 놀이를 하는데, 전 출연자를 참여시켜 놓고, 순서대로 한 명씩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임무는 전적으로 개인이 수행하는 형식인데, 만약 자기 순서에서 실수하면 다른 사람의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실패로 판정되어 전원이 벌칙을 받는다. 사실 벌칙이라기보다는 이미 잘 차려진 밥상에서 한 개씩 빼는 식인데, 이러면 실수한 사람은 질책받게 되고, 비난받게 된다. 역시나 그런 가학적인 모습을 재밌다고 보여준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노심초사하고, 평소 잘하던 것도 못하게 되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줘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 겪는 시행착오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사회초년생, 초보자,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지만, 아무리 잘 포장해도 '책임전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이상한 형식(form)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려하던 일이 또 벌어졌다. 피습! 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