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야 방귀야 (3)
별책부록
초중학교... 엄마의 생일 단골 선물은 '여성잡지'였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특히 별책부록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는 잡지. 꼭 생일이 아니더라도 한 번씩 불쑥 어떤 잡지가 갖고 싶다고 얘기했다. '읽어 보고 싶다'가 아니고...
"갖고 싶다."
엄마로서의 본성은 웬만한 남자 뺨 칠 정도로 장군감이었지만, 여자로서의 본성은 '어디 여자가~'라는, 아무도 실제로 말한 적 없고, 본인 혼자서만 의식하는, 그 시선을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옛날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다. '여자가 생필품이 아닌 본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소비재를 구입하러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러다가 잡지를 핑계로 받은 별책부록으로 다시 한 번씩 여자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엄마가 아닌 여자의 본성을 별책부록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자식들을 이렇게까지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은 불가능 하지만, 초등학생 때는 엄마 술심부름을 엄청나게 다녔다. 꼭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오라고 신신당부하는... 어쩌면 아버지 술심부름보다 더 많이 다녔을 거다. 아버지는 차라리 밖에서 마시고 들어왔다. 그때는 엄마 술심부름이 진짜 싫었는데... 어! 지금도 싫다. 요즘은 세상도 바뀌고, 본인의 인식도 바뀌어서 소주를 페트병으로 사 온다. 추운 겨울에는 주머니에 손 넣고 양쪽 팔에 당당히 하나씩 끼고...
우문현답
대학생이었나... 아마 의정부로 이사 온 후니까 군대는 다녀온 후인 것이 확실한데... 어쨌든 엄마가 생일 선물로 시집을 사달라고 했다. 갖고 싶다가 아니고, 읽어보고 싶다고... 그 시집이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다. 그때의 엄마가... 적어도 지금의 내 나이代, 아니면 아마 한 50代 초반 정도 됐을 때니까 지금의 감수성으로 읽어보면 '이런 천재적인 시인이...'라며 환호했을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마치 여성잡지 별책부록 같은 제목을 가진 그 시집을 선물로 사서 포장하기 전에 제목의 신선함에 한번 읽어봤다. 20代에게는 요즘말로 '타임슬립'같은 내용들이라서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시 제목의 의미 그대로, 그때는 몰랐다. 군대까지 갔다 와서 힘든 의무 다 끝내고, 앞 길만 창창하게 남은 청년에게 뒤돌아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말이야 방귀야'같은 시라고 생각했다.
집 골방에 쌓여있는 옛날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때 그 시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 완전 지금의 현재 마음 상태 그대로를 노래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70代가 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이 시집 기억나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집 부자됐을까? 20代로 돌아가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아니 20代로 돌아가고 싶어요?"
"부자건 뭐건 상관없고, 젊어지기야 하고 싶지... 그런데 돌아가는 건... 글쎄... 난 지금이 제일 행복한데!"
집에 돌아와 엄마의 대답을 곱씹어 봤다. 이제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의 인생 선배로서의 이야기들을 이해 안 된다며 흘려듣는 시기가 지났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전부 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다. 핵심은 행복이었다. 후회도... 추억도... 희망도... 앞 날 창창한 미래도... 전부 지금 행복한 것이 핵심이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것들... 아니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때 알았다면 행복했을까라는 '어쩌면'보다, 그 때 몰랐던 행복을 지금은 안다라는 '확실히'가 더 낫지 않을까?
이 시집은 1998년 나온 책으로...
독자층에서는 필력이 좋은 평가를 받는, 대학생 및 젊은 층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서점가에서 류시화의 시집은 물론 번역물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많다. 교보문고에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시집 판매 순위를 집계한 결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2005)이 1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1998)이 2위,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2012)이 5위에 올랐다. [출처 : 나무위키 "류시화"]
조사해 보니... 류시화가 지은이가 아니었다. 원작자는 '킴벌리 커버거'. 책을 다시 보니 '류시화 지음'이 아니고 '류시화 엮음'으로 되어있다. 어! 여기서 감동포인트 '-1'. 물론 제대로 안 본 책임이 더 크지만... 그리고 시인의 이름을 조사하다 보니 다시 감동포인트 '-1'. 역시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
'류시화'라는 이름이 시인이 되려고 지어진 운명 같은 이름이라는 생각에, 거기에서 오는 감동이 있었는데... 아마 시인도 이 이름을 듣고 나같이 '운명 같은 이름'이라고 느꼈을지도...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가. 1958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으며(현재 65 ~ 66세) 본명은 안재찬이다. '류시화'는 안재찬이 작품상에서 쓰는 필명으로 현재는 이 이름을 고정적으로 사용한다. 이 필명만 보고 류시화를 여성으로 착각했다가 아저씨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 사람도 있다. 프로필로 쓰는 사진에서는 오직 장발 스타일만을 고수하기에 더더욱 착각하기 쉽다.
들리는 여담으로는 같은 학교 선배의 본명을 허락받고 빌려 쓴 것이라고 한다. 그 선배는 '류시화'라는 이름이 이렇게까지나 유명해질 줄 몰랐다고.
필생의 역작으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인디언 연설문집이 있다. 무려 페이지가 1000쪽 가까이 되는 백과사전급의 책이다. 그리고 수필 '나의 모국어는 침묵'은 미래엔의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류시화"]
※ 인터넷에 이미 많이 올라와 있는 '시'라서 따로 발췌해 올리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