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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말이야 방귀야 (2)

by 철없는박영감
장승배기역 5번 출구


제약회사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2년 차가 됐을 무렵이다. 엄마가 볼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막 더워질 무렵이었는데, 담당했던 구역이 노량진, 흑석동, 신대방동이었다. 노량진역은 복잡하고 밥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서 7호선 장승배기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영업사원이라서 여기저기 맛집을 잘 아니까 맛있는 것 사드리겠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갔다.


때 이른 더위 탓에 반팔셔츠, 노타이가 허락됐다. 하지만 구두와 커다란 검은색 영업사원 가죽가방은 이를 전부 상쇄하고도 남았다. 아직 차가 없는 뚜벅이였던 탓에 동작구청 길을 따라 터벅터벅 발길을 옮겼다. 장승배기역까지 가는 길이 담당구역이었다. 하루에도 열 번은 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길이라서 별생각 없이 가는 도중에 병원도 들러 일도 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나왔는데, 엄마의 표정이 울기직전이다.


"나 우리 아들 이런 일 시키려고 새가 빠지게 공부시킨 거 아닌데... 날마다 발바닥에 물집 잡혀서 아프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난 새 구두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이때부터 집에 세워져만 있던 아버지의 1995년식 'Capital' 스틱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허락됐다. 직장을 다녀도 엄마눈에는 애였는지, 운전은 위험해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었다. 비 오는 날, 고물차의 창문이 고장 나 쫄딱 젖는 사건이 발생하고, 월급을 전부 바치는 조건으로 부모님 무이자 대출을 이용해 새 차를 뽑았다. 아버지 명의라서 딱 '내 꺼'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보험료가 할인된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말이 갖다 바치는 거였지 사실은 더 보태서 적금을 들어주었다.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후로 엄마는 은근히 그만두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날마다 실적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있던 차에,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29살 10월 토익 학원에 등록하며 그만뒀다. 다행히 학원 한 달 만에 좋은 점수를 받고,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중견기업이라고 할만한 그룹사에 지원했다. 이제는 영업사원이라는 경력에, 2년간 갈고닦은 말발에, 나름 이름 있는 학교 졸업했고, 토익점수도 훌륭했다. 그리고 최종면접...


역시나 같이 면접 보고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냐며 혀를 내둘렀다. 졸업하면서 지원했을 때, 떨어졌던 회사였는데, 3년 뒤에 붙었다. 그리고 신입사원연수원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무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면접관이 마지막에 의미심장하게 던진 말이 걸렸었는데, 이러려고 그랬구나 싶었다. 영업사원은 진절머리가 나서 '사무지원(?)'이었나... 하여튼 영업은 절대 지원하지 않았는데, 면접관 마지막 말이...


"영업도 잘할 수 있죠?"였다. 그래서,


"네! 물론 영업도 잘할 수 있지만, 사무지원 업무를 맡겨주시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 많이 하는 사람은 외부에서 데려온 전문 면접관이고,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은 실무자였던 것 같다. 나중에 들어와서 보니 해외영업팀장이었다.


그런데, 연수원에 인사팀이 와서 면담을 하는데, 영업부서로 발령을 내려고 한다는 거다. 영업은 죽어도 싫었기 때문에, 사무지원으로 지원했는데 왜 영업이냐고 물었더니, 'OOO 씨는 영업시키려고 뽑은 거다'라는 방귀 같은 말을 했다. (그때 그 말했던 인사팀 사원은 정확히 1년 뒤에 그만뒀다. 인사팀의 무책임함이란... 쯧쯧쯧) 실상은 영업으로 합격한 동기들이 죽어도 영업 가기 싫다고 배 째라며 나자빠지면서 꼬인 것이었다. (그때 나자빠졌던 동기들도 정확히 1년 뒤에 그만뒀다. 역시나 무책임함이란... 쯧쯧쯧)


그렇게 지방 공장으로 발령받아 내려갔다. 그리고 2년 뒤, 사내공모를 통해 다시 서울로 왔다. 영업지원팀으로... 아흑! 삼재(三災)라서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인생 최대의 실수였고, 욕심으로 이때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뻤다. 테헤란로, 이 비싼 땅에 내가 일할 1평 남짓한 책상이 생겼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자랑스럽게 사원증을 목에 걸었고, 날렵한 브리프케이스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런데...


선릉역 1번 출구


지옥으로 변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지방에서 캐리어에 옷가지를 싸서 올라와 첫 출근한 날... 이상하게 퇴근들을 안 하는 거다. 8시... 9시가 넘어가는데...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퇴근들을 안 했다. 그리고 10시가 땡! 되자마자 부장님이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하는 것이다. 에...? 에...! 첫날이라 아무것도 모르니 따라나섰다. 그리고 부장한테 찍히면 안 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시에 직장인들이 밥 먹으러 가는 곳은 뻔했다. 술집. 그래도 좋았다. 술집이면 이제 집에 가는 일만 남았으니까... 환영회도 겸해서 분위기는 좋았다. 12시 정도 됐나... 부장이 '다 먹었으면, 이제 슬슬 일하러 가자'라고 하는 것이다. 에...? 에...! 이렇게 집에 못가고 캐리어를 들고 출근한지 일주일... 토요일 새벽에 택시를 타고 겨우 집에 왔다. 새 옷을 넣어왔던 캐리어는 어느새 빨랫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


"OO아! 모텔비 빌려준 거 갚아야지...!"


"아! 네네! 당연히 그래야죠... 얼마 나왔나요?"


"20만 원..."


"에...? 에...!"


"대실 아니면 원래 비싸..."


호텔에서 잔 거였나? 영수증도 없으니 그냥 부르는 게 값이었다. 부장뿐만 아니라 차장은 만원씩 야금야금 빌려가서 입을 씻었다. 과장은... 아휴... 부장, 차장 없으면 지가 대장질 한다고... 게다가 과선배라며 학교 다닐 때는 과행사에 코빼기 안 보이는 아웃사이더였으면서, 여기서는 이래라저래라 사생활까지 간섭을 했다. 서무직원은 사무용품 하나라도 가져갈라 치면 허락 없이 캐비닛 열었다고 짜증을 부렸다.


마녀사냥


파김치가 되어 새벽에 택시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지하철 막차 시간 안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 생겼다. 한두 시간이라도 자유가 생겼다는 생각에 11시가 넘어가는 데도 행복했다. 오랜만에 맞아주는 선릉역 1번 출구에 커다랗게 책 광고배너가 있었다. 그게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그 문구는 삭막한 직장생활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책도 사서 읽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희대의 망언'이라며 조롱거리로 추락했다. 이후로 '열정페이', '노오력' 같은 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거의 '마녀사냥'급으로 번졌다.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수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울린 김난도 교수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비롯해 총 42편의 격려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서 낸 책이다. 후술 된 논란으로 인해 현재는 절판된 상태.

2010년 말에 출간되어 김난도 교수 특유의 다독이는 듯한 필체와 쉽게 읽히는 내용 설명이 20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2011, 2012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는 악평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2011년 정도만 하더라도 대학생들끼리 서로 추천하며 돌려보던 책이었다. 당시에는 젊은 층들 사이에서 소위 말하는 '힐링' 콘텐츠가 인기 있었다.

엄청난 비판에도 불구하고 20~40대들 사이에선 판매량이 좋아서 30~40대를 위한 서적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나왔다. 김난도 교수가 초고에 적어온 제목은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닌 『젊은 그대들에게』였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가 직원들과 토론을 거쳐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책, 특히 이런 류의 책 제목들을 작가가 아닌 출판사가 정하는 경우가 많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표지에 있는 글귀

『청춘이여, 코앞의 1% 이익을 좇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고 우직하게 기다리는 투자가, 열망하는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우둔한 답사자가 되어라!』책의 글귀

[출처 : 나무위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가 쓴 수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20대용 자기 계발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와 출판사가 책 제목을 너무 공격적으로 지은 점도 있고, 내용 자체도 개인의 의지와 인내만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인 탓에 실제로 고생하며 살다가 명성을 듣고서 읽어본 독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목에서 유래된 오해처럼 김난도 교수는 이 책에서 "청춘은 어떤 종류의 아픔이라도 아픈 게 정상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는데, 너는 왜 성공 못하냐? 게으른 놈들!" 같은 노골적인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실제 책의 내용을 보면 다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나 대체로 매우 흔한(?) 자기 계발서 중 하나에 불과한 수준이다. 의외로 '책 자체만 놓고 보면'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는 평을 받는다. 사실 제목이 너무 병맛이 넘쳐서 그렇지, 내용 자체는 독자들을 상대로 훈수 두려 한다기보단 20대들의 고충과 상처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고 토닥여주는 내용에 가깝다.

사실 이 책이 이렇게까지 욕을 먹은 건 책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흙수저가 쓸 내용을 금수저가 썼다는 사실 때문에 충격받은 독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정한 것에서, 청춘의 아픔을 어떻게든 정당화시키려는 의도가 없다고는 볼 수 없기에, 반론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나무위키 "아프니까 청춘이다/비판 및 논란"]

사실 조롱의 물결에 같이 휩쓰린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 그렇게 많이 위로받았던 글귀였는데... 욕하고, 비판하고, 매도하는 혁명의 쾌감에 빠져버렸다. '그때는 어렸을 때니까'라고 자위해 보지만, 잘못했다. 잘못한 게 맞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순수를 곡해한 것이 맞다. 반성한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작가의 자격이다. '배신'이라고 표현하지만,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돈, 성공'이라는 탐욕이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수저계급론', '갑질문화', '헬조선' 같은 공정성의 문제로 까지 번졌다. 요즘 글을 쓰면서 어쩌면 더 와닿았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권위 없는 사람이 쓴 에세이나 수필에 읽는 분들이 콧방귀 뀌는 것은 당연하다. '브런치스토리'라면 구독자수, 크리에이터 선정여부가 권위가 될 것이고, 진짜 작가라면 판매부수가 권위가 되겠지?


자격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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