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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는 지키지만, 호구는 아닙니다

난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2)

by 철없는박영감
겉바속촉? 아니 겉촉속바!


사람은 누군가를 외모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절반은 첫인상으로 평가하고, 평가된다. 나는 후자 쪽이다. 모나고 각진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생기다 보니 순하고 어리숙하게 본다. 도수 높은 뿔테 안경은 그런 인상을 배가 시킨다. 뿔테가 편한 걸 어떡해? 이렇게 완성된 인상은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것처럼 보이나 보다. 그래서 길거리는 쥐덫 같다. 끈적끈적한 초면의 시선들이 찝찝하게 들러붙는다.


하지만 대화를 좀 나누다 보면 상대방은 곧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아!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치겠구나.' 호객꾼이나 '도를 아십니까'가 호구 잡았네라고 접근했다가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차갑게 쌩까고 지나가는 취급을 당하면, 어떤 이는 욕을 날리며 시비를 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계속 따라붙다가 어깨 위로 시커멓게 피어오르는 음산한 아우라를 보고 질겁해서 도망가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들에게 지켜야 할 의리는 요만큼도 없다. 설사 입을 열게 만들었다 해도 긍정적인 반응은 절대 이끌어 낼 수 없다. 아는 사람은 좀 나을까? 그럴 리가 다들 큰코다치고 물러섰다. 지인이면 일단 의리상 들어는 준다. 만나도 준다. 하지만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다. 지인이 말해도 안 되는데, 감히 전화로 뭘 팔려고 한다? 아이고 어림없다. 그냥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굿 바이~ 굿 보이 신드롬


사회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지, 본성이 꽁꽁 잘 숨겨져 있었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다녀야 하는 영업으로 시작한 탓도 있었고,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에 주위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어쩌면 온통 도와주려는 사람만 있을 거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있었을 수도 있다. 속된 말로 대가리가 꽃밭이었다. 그리고 그 꽃밭에 제초제를 친 듯한 쓴 맛을 보며 맨땅이 드러났다.


맨땅이 드러나자 본성이 고개를 들었다. 음... 본성대로 사는 것은 편하면서도 힘들었다. 그때는 옳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젊은 객기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싶다. 마음이 편하면 몸이 힘들고, 몸이 편하면 마음이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은 제로섬이다. 모든 인생의 조언은 더하기 빼기가 되어 결국 '0'이 되어 사라졌다. 요즘말로 캐바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가르침과 인생은 어차피 공수래공수거라는 가르침이 그렇다.


착하게 사는 모습을 호구 잡혔다며 바보라고 욕할 필요도 없고, 잘하고 있다고 으쌰으쌰 응원할 필요도 없다. 범죄만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도덕적 이상향을 꿈꾸는 것이라며 그런 유토피아는 절대 있을 수 없다며 너무 현학적으로 접근하는 염세적인 몽상가도 있고, 그냥 내버려 두면 개판되기 딱 좋다며 걱정만 앞세우는 탁상공론의 실용주의자도 있다.


아쉽게도 중간이 없다. 아니 안 보인다. 있는데 어디 꽁꽁 숨어서 나오질 않는다. 어느 편이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런 커밍아웃은 사회적 매장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적보다 박쥐를 더 싫어한다. 박쥐가 되어 동굴로... 동굴로... 숨었다. 햇빛도 안 드는 데서 어떻게 사냐라고 걱정하지만, 막상 동굴에서 살아보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아니 동굴밖 적들보다 어둠 속에서 길을 더 잘 찾는다. 하루종일 동굴에 매달려... 기대를 갖지도 않고, 하지도 않고...


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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