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8)
한동안 뜨거웠는데
'퍼스널 컬러'. MBTI와 더불어 자신의 유니크함을 찾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꽤 인기몰이를 했었는데, 요즘은 관련 콘텐츠가 게 눈 감추듯 싹 사라진 것을 보니 열기가 많이 식었나 보다. 내용을 보면 미용실처럼 사람을 앉혀놓고 색색깔의 천을 둘러보면서 제일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건데... 신기하게도 대보는 색에 따라 분위기가 확확 바뀐다. 안색이며, 인상, 심지어 성형을 안 해도 이목구비가 또렷이 보이기까지 한다. 보고 있으면 정말 놀랄 노자였다. '색깔 하나로 사람이 저렇게까지 달라진다고?' 나의 최대 약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때는 남들의 인정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평가하기를... 어떤 디자인이나 색이 됐건, 뭐든지 대충 가져다 걸쳐만 놔도 찰떡같이 소화해 낸다는 어마무시한 패션부심을 갖고 있던 시절이다. 키는 좀 큰 편이긴 한데, 요롱이라서 다리는 짧고, 술을 하도 마셔제껴서 몸매는 드럼통, 부종이란 핑계를 대지만 얼굴은 항상 빵빵했다. 흔한 말로 펭귄 체형, 속된 말로 근자감이 쩔던 시기다. 아휴 창피해... 엄마가 가끔 놀릴 때, 그때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는데... 언젠가는 꼭 한 번은 폰을 뺏어서 그 안에 내 사진을 모두 지우고 말리라.
'나혼산'에도 출연했다는 강남의 컨설턴트와 상담을 예약하고 지인들과 같이 방문하기로 했다. 오우 그런데 이게 비용이 좀 나갔다. 10만 원이 언저리였는데... 그런데 또 점 보러 가서 내는 복채를 생각하니... 아 이 정도 하겠구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3명이 가서 30만 원이 조금 못되게 비용을 지불했다. 그리고 컨설팅이 시작됐다. '봄 웜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서 헤어스타일 추천이 바로 들어왔는데... 그나마 차태현이 좀 비벼볼 만한 언덕일까?
가라사대... 패완얼
그래도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차태현...! 진짜 자~알 생겼다. 옆에 헨리와 다니엘한테도 안 꿀린다. 40대의 희망... '스읍~ 가만 나랑 동갑이었던가...? 아! 아니다 용띠지!' 다행이다. 형님이다. 난 양띠. 이때 헤어스타일이 퇴사를 하고서 자유인을 동경한다며 장발로 가기 전, 중간 단계인 히피펌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아~ 컨설턴트가 직설적으로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같이 간 사람들까지 다 알아들었다. 아후~ 창피해... 바로 단골 미용실로 직행했다. 원장님은 속 시원하다는 듯이 행복한 표정으로 커트를 했다.
그다음으로 패션에 대한 컨설팅이 시작됐다. 봄 웜톤이 추구해야 할 패션 컬러는 간단히 말해서 파스텔 톤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에게는 올리브 색과 하늘색, 흰색도 차가운 흰색 말고, 아이보리 같은 따뜻한 흰색을 추천했다. 그동안 부 해 보일까 봐 가장 피하던 색들이었다. 그리고 옷을 입을 때, 셔츠 파스텔 톤 입었다고 바지를 진한 색으로 입지 말고, 이른바 톤온톤으로 같은 계열의 파스텔 계열을 입으라고 추천해 줬다. 앞에 사진에서도 파마머리할 때는 까만 셔츠 입고 있는데... 흐흐흐 미용실에 변신하러 가서는 그나마 파스텔 비슷한 회색 후드를 받쳐 입고 찍혀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새 옷 입었을 때, 반응이 좋았던 옷은 대부분 베이지 색 옷들이었다.
뭐 이렇게 하면 좀 나아지는 게 있으려나? 역시 가장 환영하는 건 부모님이었다. 그동안 나름 힙하다고 하고 다니던 '히피펌'은 부모님 눈에는 그저 '아줌마 파마'였고, 알 수 없는 구조로 디자인된 '배기팬츠'는 '똥 싼 바지'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객관화되고 보니까...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그동안 부모님이 혀를 끌끌 차던 것도 이해가 됐다. '내가 나를 너무 모르고 있었네...' 깨닫게 되기도 하고,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동안 정말 잘못 살아왔구나 하는 후회도 하게 되고, 반성도 하게 됐다. 그렇게 앞으로 잘 살고, 잘 풀리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잘 객관화해서, 그리고 잘 어울리는 걸 찾아서, 마지막으로 실제 적용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버건디 색 셔츠도 입고 싶고, 빨간색 스웨터도 입고 싶고, 까만색 가죽재킷도 입고 싶은 사람이다. 기분에 따라서는 비닐바지도 입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게 나다. 왜 한정을 지었지? 색깔로 한정 지을 수 없는 게 난데... 옷장은 이미 희멀건 파스텔 톤 옷으로 다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옷 고르는 게 재미없어졌다. 뭘 입어도 흐리멍덩한데 뭐.. 결론적으로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남의 눈에 잘 보이려고 용쓰는 건 내가 아니었다.
"아~ 괜히 쓸데없이 돈 들여서 다 바꿨어...!"
후회하면서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쏟아진 물이고, 던져진 주사위다. '꼼짝없이 2~3년은 희멀건하게 살아야지 뭐!' 또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만도 않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재밌고 즐겁다. 퍼스널 컬러 어쩌고 저쩌고 신경 쓰기 전에, 흰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잘 어울리는 멋진 몸매를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렇지! 바~로 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