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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휴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9)

by 철없는박영감
약 오르겠지만


좋다. 좋아 죽겠다. 행복해 미칠 지경이다. 마치 여독같이, 직장 생활에도 독소가 많았는지... 업(業) 독이 제대로 풀리려면 아직 더 놀아야 할 것 같다.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정년퇴직으로 갑자기 준비 없이 나온 분들이 '오늘은 뭐 하지?'라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좀 죄송하지만, 나는 하루가 심심할 틈이 없다. 특히 아침이 정말 달라졌다. 일어날 때마다 '아~ 출근해야 돼! 아~ 회사 가기 싫어'라며 괴로워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대로 백수 과로사로 천국에 가도 괜찮은 심정이다.


요즘은 일어날 때마다 푹 잘 자고 일어난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아~ 새 아침이 밝았네!'라며 재충전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집안에 새 바람을 일으켜 묵은 공기를 뺀다. 그리고 침구를 정리한다. 냄새가 좀 난다거나 눅눅하다 싶으면, 햇빛이 좋은 날은 일광소독을, 흐린 날은 건조기에 넣어 스팀으로 씻어준다. 그리고 양치질,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마지막으로 거울보고 '짜식~ 쫌 생겼어~ 아직까진 쓸만해'라며 나에게 윙크를 날려주고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한다.


어떤가? 여기까지만 들어도 부러워 죽을 것 같지 않은가? 하하하. 냉수를 한잔 들이켜서 정신을 차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식초희석액에 잘 씻어서 물기를 빼고 넣어놓은 사과 한 개를 냉장고에서 꺼내 예쁜 접시에 담는다. 그리고 어제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아서 무려 50%나 세일을 한 그릭요구르트를 아낌없이 듬뿍 떠서 옆에 곁들인다. 저지방 우유도 한잔 따른다. 오늘은 좀 쌀쌀하니까 광파오븐에 우유 데우기 코스로 따듯하게 데워서 먹기로 한다.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사과를 자른다. 사과는 껍질채로 그대로 먹는다.


그냥 노는데,


씨앗 부분을 잘 도려내고 그릭 요구르트를 푹 퍼서 올린 다음 크게 한 입 베어문다. 그러면 아삭하는 소리와 함께 CF의 메인모델처럼 상큼한 표정이 된다.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는 아삭 소리와 함께 과즙이 폭발한다. 단듯하면서 약간 신맛을 꾸덕한 그릭 요구르트가 잡아준다. 그릭 요구르트는 신의 한 수다. 이때즘 우유가 다 데워진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가서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컵을 두 손으로 모아 잡는다. 그러면 갑자기 혈액순환이 촉진되며 차가웠던 손이 따뜻하게 사르르 녹는다. 아 이 기분이 또 중독적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단하게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이제는 커피 타임. 우선 음악을 튼다. 물론 임의재생, 랜덤플레이다. 드립커피 머신에 원두를 넣고 물을 담아 작동시키면 잠시 후, 집안에 커피 향이 그윽하게 퍼지며 커피가 내려진다. 기다리면서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온 작가님들의 글을 본다. 우선 내가 구독하고 있는 분들이 밤사이 혹은 아침 일찍 올려놓은 글을 읽는다. 찬찬히 글들을 살펴본다. 할 말이 생겨도 바로바로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 뭐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커피가 다 내려지면 유리잔에 담아 천천히 향을 음미한다. 그리고 작가님들의 글도 같이 음미한다. 그러면서 계속 생각한다. 되뇌고, 상상하고, 떠올린다. 그래도 할 말이 남으면 댓글을 적는다. 아! 물론 라이킷도 잊지 않는다. 특히 시를 올려주는 작가님들을 좋아하는데, 그 시상들이... '어떻게 이런 표현,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 늘 감탄하며 읽는다. 브런치까지 다 읽고 나면 이제는 산책 시간이다. 아 그전에 빨래바구니를 확인한다. 많이 쌓였으면 세탁기를 돌려놓고 산책 나가고, 아니면 묵은 옷들을 스타일러에 돌려놓고 나간다.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산책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워온다. 요즘은 오전 8시에서 저녁 6시까지만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물과 커피 한잔 정도만 마신다. 이게 간헐적 단식인가? 점심을 먹고, 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본다. 요즘은 책보단 드라마... 날 풀리면 도서관 다니면서 책 많이 읽어야지 생각은 하는데... 글쎄 요즘은 드라마가 너무 좋다. 그러다 청소도 하고, 저장해 놓은 글을 퇴고해서 발행한 다음 저녁거리도 살 겸 마트를 간다. 살 게 없어도 간다.


만원으로 하루 살기를 하다 보니 여기저기 다니면서 비교해서 사게 된다. 물론 비싼 거 사도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돌아와서 산 게 있어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나면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저녁은 샐러드다. 채소를 다듬고 썰어서 그릇에 담고, 닭가슴살이나 두부, 참치로 단백질을 추가한다. 거기에 통밀 식빵을 구워서 탄수화물을 보충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표 들기름과 후추, 소금 약간을 추가하면 샐러드 준비 완료. 맛있게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이제 글을 쓴다. 와우 지금 내 삶은 내 손 안에서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


이런 걸 사람들은 한량(閑良)이라고 한다.


한량 : 조선시대 양인 이상의 특수 신분층.

<용비어천가>에는 한량의 뜻을 풀이해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한량이라 속칭한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의 한량은 본래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두고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이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에는 벼슬도 하지 못하고 학교에도 적(籍)을 두지 못해 아무런 속처(屬處)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무예(武藝)를 잘하여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 한편 돈 잘 쓰고 만판 놀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한량이 직업이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해 존재했는데, 시대에 따라 그 뜻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부유하면서도 직업과 속처가 없는 유한층(遊閑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량 [閑良]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키워야 할 자식도 없어... 잔소리할 와이프도 없어... 직장 안 다녀도 굶어 죽진 않아... 친구들이 속 모르고 부럽다고 하는 말들이다. 뭐 사실 내가 봐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보면 영락없는 한량이다. 옛날 호수에 배 띄어놓고 기생들 불러다 풍악을 울리며 풍류를 즐기던 그들 말이다. 요즘은 한량도 세분화 돼서, 부유한 은퇴자, 일찍 경제적 자유를 얻은 파이어족, 그것도 아니면 부모 잘 만난 금수저... 세대별로 다양한 한량들이 존재한다. 난 어떤 류(類)의 한량이지?


부러우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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