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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것 중에 하나

냄새는 참기 힘든 것 같아요.

by 철없는박영감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에티켓을 잘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남의 눈치를 안 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가끔 세수를 안 할 때도 있고, 마스크를 쓰고 면도를 안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털모자를 푹 눌러쓰게 되면서 머리도 잘 안 감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코로 쿰쿰하고 시큼한 쉰 내가 훅 들어오면 '샤워할 때가 됐나?'라고 생각하고 주섬주섬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기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분명히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샤워도 했는데, 입고 있는 티셔츠를 손으로 당겨 코에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습니다. 씻지는 않아도 옷은 꼭 하루에 한 번 이상 갈아입거든요. 계속 코로 밀고 들어오는 냄새에 세탁기 청소를 안 해서 빨래에서 냄새가 나는가 싶어 세탁조 청소도 하고, 건조기 먼지망을 물에 씻어서 말린 다음, 통살균코스도 돌려봅니다. 그런데 다 소용없습니다. 기분 나쁜 쉰 내가 계속 괴롭혔죠.


혹시 나이가 들면 체취가 심해진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싶어 앞으로는 하루에 세 번 이상 자주 씻고, 주말에는 눈, 비만 안 오면 부모님 모시고 온천도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쪽같이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코가 이상한 건가? 여기저기 아프다 못해 이젠 코까지 망가진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엔 이비인후과 어디를 가볼까 고민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범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화장실이었죠. 화장실 문을 닫아놓고 있다가 손 씻으러 들어간 순간, 괴롭히던 냄새가 다시 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몸은 잘 안 씻어도 집만큼은 주기적으로 꼭 청소를 합니다. 특히 화장실은요. 그래서 청소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락스에, 스팀청소기까지 동원해서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그래도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냄새를 추적해 보니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처음 이사 오고 여름에 화장실 하수구 냄새 때문에 많이 괴로웠거든요. 그래서 냄새 트랩도 설치해 보고, 전해수 살균기, UV살균기, 온갖 장비들을 동원했지만 구축 아파트 자체에서 나는 오래된 하수구 냄새에는 다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오고 추위에 냄새가 덜 나다가 봄이 다시 오면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또 원인을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편하고 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사표를 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딱 이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안 좋은 냄새가 계속 나서 괴로운데, 내가 안 씻어서 냄새가 나는가 보다 하고 계속 잘못을 내 안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바른생활을 하면 냄새가 안 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청소를 더 열심히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얼룩이 지고, 떼가 탄 것은 미관상 보기에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소음은 귀를 막거나, 신경을 쓰지 않거나, 다른 소음을 만들면 극복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냄새... 이건 안되더라고요 일단 숨을 쉬어야 하니 막을 수 없고,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냄새공격은 너무 자극적입니다. 다른 냄새로 극복한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고요.


일단 2년 전세계약을 했으니 그때까지는 버텨봐야지 생각은 하는데... 사실 너무 괴롭습니다. 결국엔 이사해야겠죠. 문 닫고 올여름만 잘 버티면 내년엔 이사 갈 수 있을 겁니다. 이것과 비슷한 마음으로 월급을 모으며 버텼고, 회사를 관뒀고, 의미 없는 관계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그러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이제 겨울, 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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