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에필로그)
All New Change... d!
잘 되던 것들인데...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갑자기 안되기 시작했다. 노트북 얘기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신작 게임 소식이나, 예전에 재밌게 했던 게임이 다시 생각나서 설치해 보면 알 수 없는 에러가 떴다. 아예 '언제 클릭은 했니?'라고 놀리는 듯 아무 반응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설령 작동이 된다 하더라도 도저히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버벅거려 눈이 아프거나, 심지어 멀미가 나기도 했다.
먼 과거가 아니다. 불과 5~6년 전이다. 2017~18년도에 구입한 노트북인데... 이제 이 컴퓨터로는 문서작업과 가벼운 동영상 시청 정도로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이 제한됐다. 대부분 신기술들이 게임에서부터 적용이 되니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문서작업과 웹서핑으로 활동가능 영역이 확 줄어들다가... 아마도 곧 윈도 업데이트 지원도 되지 않는다면서 단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살 때는 완전 신기술이었는데...
권장사양을 보니, 우와 택도 없는 스펙이다. 유치원생에게 '수학의 정석'을 풀라는 격이다. 소프트웨어는 신기술이 적용돼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었는데, 하드웨어가 구닥다리다. 어르신이 키오스크 앞에 서면 이런 기분일까? 분명히 최신형이었는데... 어느 순간 새로 사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소싯적 생각을 하며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낭패를 보거나 심하면 사기를 당하는 세상이 됐다.
가전도 마찬가지다. 2021년 처음 집을 살 때, 구입했던 최신 가전들의 새로운 버전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올뉴'를 붙이고... 집에 최신 가전들을 들여놓고 생활에 적용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삶을 누리는 기분이 썩 좋았는데... 이제는 슬슬 더 오래 쓰려면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어 사라지기 전에 소모품이라도 쟁여놔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버릴 땐 어떻게 하지? 버릴 때도 돈이 들 텐데...
머무르다
혼자 지내다 보면 가끔... 아니지 꽤 종종 불안과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부모님이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며 심심해서 전화했을 때, '우리 죽고 나면, 넌 나중에 늙어서 누구랑 대화할래?'라고 물어보면, 별로 생각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온다. 지금 상태가 영원하리라는 착각 속에 살다가 갑자기 현실로 소환된다. 예전에 잔소리라고 느꼈던 말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쓸데없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럴 땐 소실점이 어딘지도 모르는 어둠 속을 걷는 것 같다. 어둡고 긴 터널을 혼자 걷고 있는데, 끝이 너무 멀어서 빛도 들어오지 않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기 두렵고, 되돌아가자니 이미 온 길이 아까운... 결국 제자리에 머무르며 온갖 핑계를 갖다 붙여야 하는 터널 속을 말이다. 아니지. 동굴 속이 더 맞겠다. 일단 끝이 있다고 믿으면 무서워도 용기를 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막연하게 힘 빼며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면 반대로 먼 미래라고 생각도 하지 않던 일들이 점점 가까운 미래로 다가와서 그런 건가? 뵈는 게 없어서 멋 모르고 패기로 덤빌 수 있는, 자빠지고, 무르팍 깨지고, 접질려서 큰코다치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버린...? 새로운 환경이 더 두려운...? 그래도 밖으로 나아가야지 라는 채찍질과 반드시 볕 들 날이 올 거야라는 응원이 거추장스러워진...? 어둠 속을 헤매는 것에 익숙해져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아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실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것을 이제 어느 정도 알긴 알겠는데... 그래서 불행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 걸까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또 조금 있으면 그래도 불행한 건 싫어라면서 두려움을 극복하자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터널이건 동굴이건, 불행하건 두렵건, 머무르면 가만히 앉아서 구닥다리가 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럴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그냥 노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덜고자 고민하는 글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혼자 살기 연습(가제)"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아마도 저기까지 쓰고 나면, 여태까지 쓴 것들을 모아서 브런치북으로 엮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