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아,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프롤로그)
어 알았어... 아직 거리를 좀 두자고?
찌릿! 따끔! 난리가 났다. 세상이 점점 더 나를 거부한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로 하면 되지, 말도 하기 싫은가... 물리적 충격을 먼저 선사한다. 손만 댔다 하면, 찌릿! 좀 심하면 빠직! 아무리 겨울철이라지만, 정전기가... '따다 다닥! 따닥!'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너무 심해! 그만 좀 괴롭혀! 꼭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시원하겠어?"
핸드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며 불평해 보지만... 조물조물 문질러서 기껏 흡수시켜 놨더니,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 '에라이! 또 손 씻어야 되잖아.' 이제는 내 몸도 내 편이 아니다. 남편이다. 이럴 땐, 이혼하고 싶다. 이간질시키는 건가?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 '어이구~ 인간아!!'
여태껏 극지성피부를 자랑하며, 우리나라를 산유국 반열에 올리겠다던 야심 찬 포부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며 기름기가 싹 걷히자 건조한 사막만 남겼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15년을 넘게 살다 보니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북쪽 한파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추워질수록 심해지는 건조함, 그리고 뒤 따르는 정전기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들었다. '미안 내가 졌어...!'
손을 씻으려고 물을 트는데, 원래 수전은 플라스틱 아닌가? 플라스틱에도 정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수도꼭지에 손을 댔는데... 빡! 따다 다닥! 물소리 보다 더 큰 소리가 나며 손끝에 날카로운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산유국 진출시키기 전에 전기생산시설로 먼저 등록할 수 있을 듯. '알았어. 말로 하자. 말로...'
이제 그만 화해하자! 내가 잘못했어! 그동안 많이 서운했구나!
이번주 꽃샘추위가 지나면 진짜 봄이 오겠지? 이제 슬슬 세상과 화해하고 밖으로 나서보려고 한다. 이제 글도 좀 바뀌어야겠지? 일단은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어볼까? 아버지가 타이어만 바꾸면 되는 자전거를 주워놨다고 했는데... 그거 고쳐서 자전거 타고 봄바람맞으며 기분 좋게 천변을 따라 도서관에 달려가볼까? 집안에 틀어박혀 고민해서 썼던 글과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도 기대가 커진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