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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r 13. 2024

세상은 어르고 달래주지 않더라

세상아,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2)

등 돌리고 눕다


    어렸을 때 이런 경험 한 번씩 있을 거다. 뭔가 서운하고, 토라져서 방에 들어가 이불 덮어쓰고 등 돌리며 훽 돌아 누웠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슬슬 답답하기도 하고, 고개도 내밀고 싶은데, 삐쳐있음은 어필해야겠고, 그래서 방문 밖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지만, TV소리만 들리는..., '우리 아들 뭐가 그렇게 서운해? 아빠한테 말해봐 혹은 엄마한테...'라고 관심 보이면 좋겠는데, 아무 낌새도 없는 그야말로 혼자 '생쑈'하는 상황.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는 아파오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혼자 자괴감도 들고, 결국 분노마저 사그라들면, 멋쩍게 방문을 슬쩍 열고 나오는..., 하지만 나만 빼놓고 나머지는 TV 보면서 치킨을 뜯고 있는..., 그 광경에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지?'라는 배신감에 몸서리치지만, '또 나만 바보 됐네'라는 생각에 뭔 일 있었냐는 듯이 다시 웃은 얼굴로 그 속에 섞여 같이 치킨을 뜯으며 TV 속 코미디를 보며 깔깔 웃었던 상황. 


    그렇게 혼자 심각해졌다가, 혼자 풀고, 혼자 해소한 경험.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세상이 딱 그랬다. '세상아 비켜라 내가 왔다'라며 혼자 세상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라이트 훅, 레프트 훅, 어퍼 컷에 다운 일보직전의 그로기 상태가 되어, '세상, 너랑 이제 안 놀아'라고 혼자 삐쳐서 훽 돌아 누웠지만, 세상은 지나가는 개미만도 못하다는 듯 거들떠도 안 봤다. 아니 안중에도 없었다.


허리도 아프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멋쩍게 슬쩍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는데... 다시 문 열고 나온 세상은 엄청나게 뭔가 달라져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예상대로 그대로였다. '뭔 일 있었니?' 묻지도 않는다. 그저 TV소리에 집중시킬 뿐... '기다리고 있었어!' 환대해 주지도 않는다. 그저 치킨 냄새에 이끌려 오기를 놔둘 뿐... 아니 바뀌긴 바뀌었지...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지... 세상은 그대로일 뿐이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 따로 없네...' 역설적으로 세상이 좁다고 느껴졌다. 정확히는 세상을 담아낼 그릇이 작았던 거겠지만... 이제는 자존심, 체면 다 버리고 세상에게 다가가야 할 것 같다. 아직 수줍음에 쭈뼛쭈뼛 대고 있지만, 조심스럽게 한 발짝 다가가 본다. 너무 불쑥 다가가 세상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뭔 일 있었냐는 듯이 다시 웃는 얼굴로 그 속에 섞여 치킨을 뜯으며 같이 깔깔 웃어보려 한다.


    세상은 아무리 삐치고, 화가 나도 어르고 달래주지 않았다. 그냥 투정 부리게 놔 둘 뿐... 어떤 조치를 취하지도,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울고불고 생떼 부리며 어리광 부리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바로 그 비법대로... 그러면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슬쩍 엄마, 아빠 옷자락을 붙들며 '잘못했어요'라고 용서를 구한다. 세상이 그렇더라. 부모 같더라. 날 미워하는 게 아니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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