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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r 14. 2024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정의(情意)

세상아,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3)

민주주의의 꽃


    선거철이 다가온다. 뉴스가 보기 싫어지는 시기가 다가온다는 말도 된다. 평상시에도 정치권 뉴스는 '생산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소모적'인 내용뿐이었다. 그래서 피로하고 피곤하다. 뉴스뿐만 아니라 대화 중에도 '政治'에 '정'자만 나와도 채널을 돌리 듯 시선을 돌리고, TV를 끄듯 신경을 껐다. 사실 '브런치스토리'에서도 잘 구독하던 작가님이 갑자기 정치 성향을 띤 글을 올리면 바로 구독취소를 눌렀다.


    나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이슈는 되도록 안 쓰고 만약 그럴 낌새가 보이면 철저히 중간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했다. 어릴 때는 세상에 선과 악이 흑과 백처럼 명확했다. 회색은 없었다. 그런데 미술시간인지 기술시간인지... 흑과 백을 얇게 계속 교차시켰더니 회색이 되었다. 세상은 그랬다. 서로 자기가 善이고 상대방이 惡이라고 비난하며 흑과 백으로 선명하게 나뉜 듯 싸우지만, 크게 보면 결국 서로 섞여 회색이었다.


    그래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선거, 투표는 남의 일로 넘겼고, 미미한 표 보태봤자, '하나마나'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너도 선이고, 너도 옳다라며 비위를 맞췄고, 저기서는 너도 악이고, 너도 틀렸다며 꼰대력을 과시했다. 결국은 모두에게 事情이 있을 거고, 그것은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은 영원불멸하지 않아, 지금 옳은 것이 나중에 그를 수 있고, 그 반대도 똑같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의롭다고 확신할 때가 가장 불의하다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할 수 있을까? 다섯 획의 '正'자는 반장 선거 개표에서 득표수를 셀 때, 定義가 가장 명확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존재하는 정의... 아니지 사람으로 국한시킬 수도 없다. 생명체? 그것도 작다. 법칙, 자연현상 등등...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존재들은 저마다의 正義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定義하려고 한다. 그리고 존재영역이 맞닿는 지점에서 마찰이 생기고, 불의가 발생한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던 나는 명확하지 않음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더 세상에 다가가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동생과 형제간에 우애 있게... 형이 양보하면서 동생 잘 챙겨야 한다고 주입식으로 교육, 아니 세뇌하던 부모님은 작은아버지가 도움을 요청해 오자 '나도 자식 건사하고, 가족 먹여 살리느라 여력이 없다'며 모른 척했다. 부모님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꼭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언제부터인가 자신 있게 내 생각이 100% 옳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멀리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니,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어렸을 때 '무찌르자 공산당'처럼, 흑과 백으로 양분되었던 것은 4등분, 8등분으로 수 없이 나뉘다 회색이 되었다. 그리고 회색분자,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正義는 定義할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선거는 쓸데없는 행정력 낭비고, 공휴일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모순의 집대성이었다. 게다가 지난 대선은 투표율이 70%가 넘었다고 했다. 높은 투표율은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반증이라고, 좋은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많은 사람이 참여한 선거에서 비등비등한 표 차로 당선이 되면 싸움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에 지금의 피로와 피곤함을 더했다. 예전 같으면 그 때문에 피하고, 멀리하고, 도망쳤을 텐데... 세상이랑 친해지기로 마음먹은 지금은 생각을 고쳐먹는다. 선거, 해야 한다! 투표, 당연히 해야 한다! 서로 박 터지게 싸우고, 고민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다만 심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를 벌주겠다는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 선거는 우리의 대표를 뽑는 것이지, 철퇴를 내리치는 場이 아니다.


    그리고 꼭 투표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힘을 보태야 한다. 세상의 모든 정의가 경합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나누지 말자. 삼원색이 다 섞이면 결국 검은색 밖에 안된다.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감을 다 섞으면 검은색이지만, 빛을 색색깔 별로 다 섞으면 하얀빛이 된다. 우리가 믿는 정의를 빛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한데 섞여서 밝은 빛이 되게 해 보자.


오색찬란한 영롱한 빛을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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