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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커피메이커! 안녕...

마지막 커피를 내리며...

by 철없는박영감
편리하지만 몸에 해로울 수도 있는...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오늘은 커피메이커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살면서 편리함만 너무 추구하다 보니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사는 것 같다는 주제로 그동안 글을 몇 번 올렸었는데요. 오늘은 그 편리함 추구가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더 써봅니다. 커피메이커 구매하시려는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건강하게 커피를 마시려면... (물론 커피가 몸에 해롭다는 말은 아닙니다. ^^) 에스프레소보다는 드립 커피가 좋고, 이것도 연하게 희석해서 먹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 드립커피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예전에 취직하기 전에 PC방과 카페를 동시에 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에스프레소 머신은 사용해 봤거든요. 그런데 드립커피는 마셔본 적도, 만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존재 자체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친구 중에 커피 전문점에서 드립커피 만드는 일을 해 본 친구가 있었는데, 드립커피는 맛 내기 어렵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했었죠. 그러다 신박한 아이템을 하나 발견합니다. 홀빈 원두를 넣으면 분쇄하고, 뜸을 들여서, 드립까지 한 번에 해주는... 아~ 딱! 찾아 헤매던 그런 놈이었습니다. 가격도 7만 원대로 저렴했죠. 중국제라는 것이 좀 걸렸지만, 구매평도 괜찮았습니다.


어서 와 커피메이커! 안녕?


간혹 플라스틱 냄새가 심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뭐 이미 의식은 거의 확증 편향 수준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질렀습니다. 처음에는 역시나 플라스틱 냄새와 맛이 좀 났습니다. 그런데 설명서를 보니, 세척을 몇 번 해주고, 계속 쓰다 보면 괜찮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죠.


"이미 돈 주고 샀고, 무를 수 없다!"


이제는 신봉자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거의 4년을 썼는데... 설거지를 하다가 어마어마한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커피메이커 안에 들어가는 스테인리스 필터인데요. 제품 소개 자료에는 스테인리스 필터라서 여과지도 필요 없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도 있고, 안전하기까지 하다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4년을 쓰다 보니, 필터 내부 플라스틱이 많이 소실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하늘 솟지 않았다면 플라스틱 부위의 사라진 부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ㅜㅠ


다 제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당장 미세플라스틱이 확 다가오더군요. 더 이상 커피가 맛있지도 않았고, 마시기 조차 싫어졌습니다. 당연히 다른 커피메이커 제품을 검색했지요. 그런데 가격도 가격인데, 대부분 스테인리스 필터를 내세우는 제품은 저렇게 플라스틱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아!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하겠구나라고 동네방네 알리고 싶었죠. 하지만 변두리 작가에게 그런 파워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잘 가 커피메이커! 안녕...


커피메이커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동 드립 기구들로 눈을 돌렸습니다. 플라스틱에 크게 데인 터라... 그리고 여과지는 쓰레기와 환경오염 때문에... 분쇄 원두는 이미 향을 포기한 그야말로 검은 가루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거르다 보니, 그라인더와 드리퍼가 남더군요. 전동 그라인더는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수동으로 알아보던 중, '이상순 그라인더'라면서 코만단테 그라인더가 유명하다고 검색됐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어마무시하더군요. 30~60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가격을 보자마자 바로 패스했죠. 드리퍼는 그나마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져 있고, 드립 포트와 세트로 판매되는 저렴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고, 구매결정은 못하고 매일 결제버튼 위로 마우스 커서만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커피 수혈을 못한 날들이 쌓여가고, 커피에 점점 굶주리게 되며 금단증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흑흑


이렇게 또 하나의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날도 역시나 동네 마트에서 소비기한이 임박해서 할인하는 유제품들을 고르고 있었는데, 혹시 커피 기구는 가전매장 진열상품처럼 할인하는 게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마트 안으로 찾아 나섰죠. 아! 그런데 그런 게 있네요. 아핫! 그라인더... 메이커는 모르겠지만 세라믹 재질로 된 맷돌원리의 대용량 그라인더가, 진열상품 할인으로 단돈 만오천 원에 한 개가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뭐? 스피드! 얼른 사 왔죠.


그리고 다시 검은색의 행복을 맛보고 있습니다. 드립 커피. 요게 요게 요리 같이 아주 오묘하더군요. 오랜만에 intj의 기질을 발휘해서 드립 방법을 요리조리 연구했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에 따라 맛의 변화가 확연히 차이가 나더군요. 이게 아주 요물입니다. 아마도 공들여서 내 맘대로 내리다 보니 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요리도 내가 직접 맛을 상상해 가며 요리한 게 제일 맛있잖아요? 하하하.


행복, 의외로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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