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아,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6)
답정너
세상은 두 가지 만고불변의 진리를 강요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생태계를 유지하는 섭리이며,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벗어날 수 없는 절대 평등의 원칙이다. 하지만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은 깨질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두 진리에 '적응'이라는 정답을 정해두었다. 예외는 없다. 타협점도 안 보인다. 이제 막 공부 시작하려고 하는데, '공부 안 하니?'라고 핀잔을 들은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더 거부하고 싶다.
"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거든...!"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고전적인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던 사람은 누구일까?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오답은 있는 것 같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가 많은 것을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여기서 벗어나면 오답 아닐까? 사춘기의 반항이 세상에 혼자 우뚝 서보겠다는 치기의 발현이라면, 오답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보려는 이 반항은 무엇의 발현인가? 인생에 오답이 없다는 위로는 경멸하는 눈빛에 증발해 버린다.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존재의 이유, 아니 존재 자체를 처음으로 의심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OO 한다'라는 파생된 명제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적응하기 싫다. 적응하면 사라질 것 같다. 피곤하게 산다고 놀려대는 상처들은 이제 굳은살이 박여서 아프지도 않다. 그러려니 마이동풍으로 흘려보낸다. 적응했다. 그래 적응하고 말았다. 결국엔 그러고야 말았다.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사라진다. 아물었을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다. 나만 변한다. 세상은 다가오지 않는다. 제자리다. 먼저 다가가야 한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내버려 둔다. 갑자기 왔다가 홀연히 간다. 세상이란 녀석과 친해지려면... 친해지려고 노력하면... 친해지려고 시도해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세상이란 건 실체가 없다. 인과율도 없고, 흐름도 없고, 우연도 없다. 내가 있어 세상은 존재한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가가도 되겠냐고 물을 필요도 없고, 다가갈 필요도 없다. 그냥 있으면 된다. 어떻게?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