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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r 28. 2024

좀 행복해지면 안 돼

세상아,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에필로그)

재미보장


    짙은 아이라인과 표독한 표정, 적반하장의 뻔뻔한 태도로 악행을 일삼는 드라마 속의 악녀는 재미를 보장하는 단골 캐릭터이다. 특히 초반에 여주인공의 행복을 가로채며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중반에 온갖 시련을 견디고 재기한 여주인공에게 갖가지 권모술수로 빼앗은 것들을 지키려고 발악하다가, 후반에 그동안 저지른 악행이 전부 들통나며 몰락하는 권선징악의 전개는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마성의 플롯이다.


    여주인공이 나락에 빠지면 빠질수록, 악녀 캐릭터가 악독하면 악독할수록 권선징악의 사이다 전개는 파급력이 극대화되어 역대급 시청률을 자랑하게 된다. 요즘같이 경기가 매우 안 좋고, 앞으로도 안 좋아질 일만 남은 것 같은 침울한 시기에는 꼭 전 국민적으로 욕을 먹는 악녀 캐릭터가 나오게 마련이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 어디선가 엄청난 악녀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악녀들은 공통적으로 행복을 기다리지 않고, 갈구하고, 쟁취한다. 그래서 결말에 가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사가 '나는 좀 행복해지면 안 돼!'類의 대사이다. 다른 이의 행복을 뺏어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대부분 순간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출발하지만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난 '행복하고 싶다'는 작은 욕심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 결국 이에 먹히며 이성을 상실하고 몰락해 간다.


행복의 조건


    현실에서 '~라면, ~만 있으면'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에 먹히면 드라마 속 악녀처럼 이성을 상실하며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특히 지금 내 것이 아니고 나한테 없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착각은 요즘 말하는 상실감, 좌절감으로 희망마저 뺏고, 나아질 것 없는 암울한 앞 날만 남기게 된다. 같은 이치로 반대의 '~아니라면, ~만 없으면' 행복해질 거라는 금욕적인 생활, 요즘의 무지출 챌린지도 좋은 행보는 아니다.


    특히 상대적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노력해서 얻은 힘이 더 강한 힘 앞에서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쉽게 상대적 행복은 무용지물이 된다. 행복해지는 데 조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것도 부질없다. 행복은 바람처럼 왔다 간다. 실체가 없다. 모두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것처럼 행복은 항상 우리 머리 위에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잠언들이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만 잘 와닿지 않는다. 세상은 다 살아보고 나야, '후회'라는 녀석으로 이 진리를 알려준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고민은 드라마 속 악녀 캐릭터처럼 판타지스럽다. '나는 좀 행복해지면 안 돼!'라는 악녀의 마지막 대사처럼 공허하다. 금수저, 일확천금, 로또와 마찬가지로 소확행, 일상에서의 행복 모두 뜬 구름이다. 그러니 제발 이런저런 이유 갖다 붙이지 말고...


그냥 좀 행복해지면 안 될까?





※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그날그날의 생각을 발산하듯 써왔는데, 퇴고는 더 세심히 하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해서 조만간 브런치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쓰고 있는 소설이 완결되면 매일매일 일기 쓰듯이 찾아뵙던 것을, 연재 형식에 더 집중해서 찾아뵐까 생각 중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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