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흐 생물을 전공하다 보니, 이런 공상을... (1)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어렸을 때다.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부모님이 처음으로 가져본 '내 집'이었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였을 때인데, 두 분이 힘을 모아 아끼고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산 집이었다. 두 분이 탄생시킨 집 宇, 집 宙! 합쳐서 우주. 그렇게 부모님이라는 태양이 비추는 우주가 생겼다. 조그맣고 어렸던 만큼 우주는 아주 넓었다. 인테리어를 한다고 낡은 단독주택 내부를 빅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야말로 까뒤집었다. 기름보일러를 놓고, 도배장판을 해서 태어난 새로운 우주는 처음엔 낯설고 거칠었다.
'날 일 달 월 찰 영 기울 측'
여러 날이 저물고, 달이 차오르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주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두 분이 만든 우주의 빈 공간을 점점 채워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무게 추가 기울었다. 고3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군대도 다녀왔다. 두 분의 우주를 빠져나와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의 태양계는 부모님이 계신 그곳이었다.
'별 진 잘 숙 벌일 렬 베풀 장'
군대도 다녀오고, 취직도 하며,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멀게만 느껴졌던 별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우주는 마치 세포 같았다. 세포 분열로 생긴 세포가 자라서 다시 새로운 세포 분열을 할 준비를 마치면, 세포는 어느 순간 분열을 해야 했다. 그래야 세포 안과 밖으로 물질을 효율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포가 커질수록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가 작아져 물질교환이 효율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나의 새 우주를 탄생시킬 세포분열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우주 세포설
어렸을 때, 우리 집 마당 수돗가에서 화분에 꽃씨를 심었다. 며칠간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어느 순간 화분의 흙모양이 살짝 변하는가 싶더니 싹이 올라왔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더 열심히 물을 주며 보살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싹은 더 자라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는데, 싹이 나면 솎아주기도 해야 하고, 더 크면 넓은 화분으로 옮겨심기도 해야 했다.
작은 화분에서는 모든 싹이 다 잘 자랄 수 없었다. 그 안에서 다 살리겠다고 아무리 물을 주고 잘 보살펴도 결국엔 다 죽을 뿐이었다. 죽어버린 싹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뭔가 거대한 기운이 나를 뒤덮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 위로 하늘이 있고, 그 하늘 너머로 우주가 있고, 우주를 넘어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를 넘으면 은하가 있고, 뭔가가 있고, 있고, 또 있고, 계속 있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를 무한히 확장시킬수록 나의 하찮음에 덜컥 겁이 났다. 우주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의 티끌도 채 안될 정도로 작게 느껴졌고... 그런 내 손으로 심은 씨앗은 더 가냘프게 느껴졌다. 오늘 갑자기 이 일이 떠올랐다. 아니지 정확히는 무슨 글을 써볼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AI에게 글감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평행 우주라는 글감을 던져줬다. 그리고 우주가 세포가 아닐까 라는 평소의 공상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어린 시절의 그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운명론
어디까지나 나의 공상, 망상이다. 전공으로 식물을 공부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평행우주, 멀티버스가 한참 유행할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주는 하나의 세포이고, 각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우주이다. 그래서 그 안에 구성물질은 비슷하면서도 하나하나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결국 같은 운명을 가진 구성물질이라는 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뭐 이런 생각? 운명론적 평행우주관이라고 할까? 우주를 세포로 보면, '하나의 세포가 분열되어 각기 다른 세포로 나뉘지만, 그 본질은 같다는 점', '각 우주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운명론과 비슷하고, '하지만 그 안의 구성물들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운명의 디테일을 가진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은 인과관계가 없지만 결국은 정해져 있는 길이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실존주의와 비슷하면서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아~ 철학공부 좀 더해야겠다.
이상 개똥철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