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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r 21. 2024

실마리

세상아, 한 발 다가가도 되겠니? (5)

혹시?


    소설에 정신질환을 앓는 인물을 쓰려다 보니, 관련 논문을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읽다 보면, 음... 전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속의 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추상적으로 머릿속에 맴돌던 뭔가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도리어 논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고, 경험과 상황에 빗대어 생각하다 보면 어렵던 것이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논문이 시발점이 되어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뿌옇던, 평소에 정체를 알 수 없던, 고민거리의 실체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기도 한다. 특히 막히는 낱말이나 어려운 용어에 생각이 멈추는 동시에 논리와 맥락과 상관없이 평소의 고민거리가 떠오르는 경우가 그렇다. 모르는 내용이지만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드는 딴생각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이런 게 있구나 정도의 존재감만 느끼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민거리 중에 하나가 생각이 언어에 갇혔다는 느낌이었다. 쓰면 쓸수록, 고민하면 할수록 답답함만 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마음 때문에, 진정한 자유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어휘력 부족 때문인가 싶어서 사전을 옆에 끼고 살아도 봤다. 중의적인 뜻, 이상하다고 느끼던 표현, 그리고 의심 드는 문장에 대해서도 고찰해 봤지만 답이 안 나왔다.


이건가?


    하도 답이 안 나오다 보니, 이 정체만 알아내면 세상에 서운했던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도 생겼다. 그러다가 잊혔는데... 오늘 논문을 읽다가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논문은 인본주의, 실존주의 심리치료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설루션과 치료가 난무하는 현실을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학문적 근거를 공부하려고 읽은 논문이다.


    논문의 본문 중에 언어의 분류*를 통해 논리를 펼치는 부분이 있는데, 읽다 보니 생각이 언어에 갇혔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우와 진짜로 있었구나... 실체가 있었구나... 이미 학자들이 고민한 내용이구나...' 가장 먼저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많이 고민했던 내용이라서 그런지 내용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아~ 이런 느낌이었구나. 이런 데서 답답함을 느꼈구나.' 고민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 찾아 읽을거리가 꼬리를 물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나 이런 삶을 원했던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뭔가 찾았다는 눈치. 해소될 거란 기대. 알아가는 기쁨. 더 살아야 하는 이유. 많은 의미가 한꺼번에 관통했다. 너무 벅차서 도서관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일단 짐을 싸서 나왔다. 오늘밤은 형광등이 오랜만에 제 역할을 하는 날이 될 것 같다.


세상 너 쫌만 기다려! 내가 곧 간다!!


*인간이 가진 언어는 다양한 형태로 분류되지만 기원론적(혹은 발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언어는 신체언어와 문자언어로 구분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외재화된 문자언어 체계는 인간의 의식, 무의식, 신체, 그리고 그가 삶을 영위하는 생활세계를 철저하리만큼 자신의 것으로 구조화하면서 인간의 삶을 소외시킨다.

[출처 : "심리치료 방법으로서의 일상생활치료 개념화 과정" 재활심리연구, 제22권 제2호, 2015, Vol.22, No.2, 357-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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