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박영감 Apr 15. 2024

핑계 (이상하지만 억지로)

2024년 04월 둘째 주

드라이브


    '따뜻한'을 넘어 '더운' 봄 주말이었습니다. 늙고 아픈 아들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힘없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주일 동안 일 다니느라 고생한 부모님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늘 바람 쐬러 가는 광릉 수목원을 벗어나, 지나가는 말로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던 팔당댐과 퇴촌 일대로 드라이브를 다녀왔습니다. 길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했고, 조금 산으로 올라가면 진달래도 예쁘게 피었더군요.


    차로 이동한 시간만 4~5시간이 걸렸으니 고속도로를 탔다면 대구는 족히 갔을 겁니다. 확실히 수목원과는 다른 느낌의 달콤한 강바람이었습니다. 숲이 아닌 강은 시야도 확 트여서 눈의 피로도 풀리더군요. 덥다는 일기예보를 봐서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아침의 선선한 공기로 기분전환을 하고 점심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식당에서 순댓국을 먹었습니다. 배까지 부르니 행복이 배가 되더군요.


    긴 이동 시간만큼 부모님과 정말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차만 탔다 하면 지나는 곳마다 몰라보게 바뀌었다며 40년도 더 지난 '라떼'신공을 시전 하며 추억에 잠겼는데요. 엄마는 그럴 때마다 지긋지긋하다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달래 가며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운전까지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난이도의 나들이였습니다.


핑마 (핑크색 마스크) : 어색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봐?


옷도 화사하게 입자고 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사실 추억에 더 많이 잠기라고 일부러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나이 들면, 옛날 추억들 많이 떠올리고, 말도 많이 해야, 치매도 안 걸리고, 우울증도 안 온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나중에는 아버지도 본인의 레퍼토리가 반복적인 것을 느꼈는지 점점 말을 줄이고 저와 엄마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봄이라고 핑크색 마스크도 준비했는데요, 처음에는 남자가 무슨 분홍색 마스크냐며 질색팔색하던 아버지도 어느샌가 같이 마스크를 끼고 추억 떠올리기를 멈추고, 추억 만들기에 동참했습니다.


    오늘 길에는 내촌에 들러서 내촌 막걸리도 사 왔는데요. 저는 술을 안 마셔서 모르는데 꽤 유명한 막걸리인가 봅니다. 일요일이라서 양조장이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이 근처 하나로 마트에서 한 박스를 사 왔습니다. 분명히 올해 초에 술, 담배 끊는다고 선언했는데... 어기면 백만 원 내놓기로 했는데... 담배는 안 피우는 것 같은데, 술은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서 순댓국 돈 내는 것으로 벌금은 퉁쳤습니다.


    밥 먹으면서 슬쩍 이제 일 그만하시는 게 어떻냐고 물었더니, 아들 순댓국 사주려면 아직 더 벌어야 한다고 합니다. 80 넘어서도 일한다는 자부심이 큰 것 같아서 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이 나이에 마음대로 카드 긁으면서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으냐며 본인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할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차 타고 내릴 때마다 무릎이 아프다며 끙끙 앓습니다. 아무래도 성공하면 차부터 높은 차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풀코스 서비스


    저녁에는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습니다. 드라이브에 저녁식사까지 풀코스로... 하루에 반 병씩 마셔서 한 달간 먹겠다던 막걸리는... 음, 아마 계획대로 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지금 몸살이 났습니다. 앓아누워있다가 이제 겨우 정신 차렸는데, 비가 오고 있네요. 꽃이 다 질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 다녀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비 때문에 오늘도 파전이나 부추전 핑계로 막걸리를 마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뭐 핑계는 갖다 붙이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막걸리는 소주나 다른 독주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라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