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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y 07. 2024

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

2024년 05월 첫째 주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은 첫 주부터 3일 연휴입니다. 노동절을 잘 활용하면 휴가 써서 일주일간 쉴 수 있는 주이기도 했습니다. 뭐 백수인 저에게는 크게 의미 없는 스케줄이지만, 연휴 첫날 맑다가 나머지 이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깜짝 놀랄 만큼 대단했습니다. 작년에도 이맘때 태풍이 와서 과수원 피해가 많았던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금사과, 다이아몬드 사과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연휴 첫날 아침부터 전화가 울렸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밖이 훤하더군요. 그래서 한 8시쯤 됐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6시더군요. 해가 참 많이 빨라졌습니다. 오후도 7시인데도 밝더군요. 이제 더울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요즘 뭐가 문제인지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겨우 잠들었는데... 이때 울리는 벨소리는 참 신경질적이더군요. 그래도 '엄마'가 떠서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아직 자나?"


 "예, 이제 일어나려고요."


 "난 너 일찍 일어나서, 벌써 일어난 줄 알고 전화했는데..."


 "예... 어제는 잠을 좀 설쳐서 이제 깼네요."


 "드라이브 가자! 수목원에 맑은 공기 좀 쐬러 가자!"


 "예? 아... 몸이 안 좋아서 운전할 기운이 없는데..."


 "아, 그래? 기운이 없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더 자라..."


 "예..."


    좋게 전화를 끊었지만 좀 찜찜했습니다. '그래도 연휴니까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 가도 되고, 모래 가도 되고...' 이런 심정이었습니다. 6시에 잠이 깨서 뒹굴뒹굴하다가 뉴스를 틀었는데 내일부터 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입니다. '아~ 어떡할까?' 잠시 갈등을 때렸습니다. 밖을 보니 하늘은 파랗고 공기도 굉장히 맑았습니다.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믿기지 않을 만큼요... 


    '에라이~' 벌떡 일어나서 환기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맑은데 내일부터 비가 온다네요? 7시 30분까지 집 앞으로 갈게요. 준비해서 나오세요. 드라이브 가요..."


 "그래? 아부지 일어나다가... 안 간다고 해서 다시 누웠는데... 잠깐..."


엄마가 아버지를 깨우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멀찍이 들려옵니다.


 "여보~ 세요! 아들이 드라이브 가자는 데... 갈래요? 어떡할래요?"


 "그래? 고마 가자!"


 "아부지 가신단다... 7시 30분?"


 "예. 너무 빠른가요?"


 "아니야. 준비할 수 있어. 집 앞으로 올 거지?"


 "네..."


오르막 길, 내리막 길


    그렇게 우리 가족 정규코스인 광릉수목원을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주에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한 오솔길을 완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차만 타고 다니다가, 지난주 시원한 공기에 홀려 울창한 오솔길을 따라 산림욕을 했습니다. 처음엔 조용한 길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갈수록 급해지는 경사 때문에 내려올 때 무릎 통증이 걱정돼서 그냥 돌아왔던 곳입니다. 


    이번에는 지팡이도 준비하고, 운동화도 신고, 복장도 편하게 갖추고 출발했습니다. 예전에 등산을 할 때, 젊은 놈이 그거 조금 걸었다고 벌써 헐떡대냐며 잔소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두 분 보폭에 맞춰 느긋하게 걸으면, 저는 땀도 한 방울 안 납니다. 그에 비해 부모님은 헐떡이며 겨우 겨우 오릅니다. 다행히 예상보다 오르막 길은 길지 않았고,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해서 부모님은 바위에 털썩 앉아 숨을 골랐습니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부모님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완만해도 노인들에게 내리막 길은 각오를 다져야만 했습니다. 연골주사, 마늘주사 등... 근육통, 신경통, 관절통 등등... 점점 받아야 할 시술이 늘어나고, 달고 사는 통증이 많아지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는 별로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은데 중풍 때문인지 살짝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있더군요. 지금 부모님의 건강에 감사했습니다.


까똑~!


    갑자기 손자, 손녀 사진이 전송됐습니다. 두 분은 사진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단톡방에 전송된 사진을 보고 있다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불과 1년 전인데... 아버지가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몰랐는데... 정말 몰랐는데, 부모님의 노화는 시나브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오늘 드라이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뭐 하자고 하면, 되도록 거절 안 하고 다 들어드리려고 합니다. 몸은 조금 아파도 나중에 후회로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그렇게 합니다. 좀 이기적이지요? '나 후회 안 하려고, 나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합니다. 의도가 참 불순하지만,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전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이번 연휴는 첫날의 맑은 날씨 덕분에, 그리고 이틀간 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덕분에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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