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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y 14. 2024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사과 했으면 끝났을 일 중에 하나

2024년 05월 둘째 주

내로남불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말 우리 슴삼이(SM3, 2008년식)를 처음 출고해 온 날, 아버지는 초보운전자인 나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그동안 운전해 오면서 천하에 꼴 보기 싫었던 게, 조수석에 탄 사람이 대시보드에 발 올려놓는 거랑, 창에 팔 걸치고 운전하는기다. 그러니까 지금은 초보운전이라서 안 그러겠지만, 나중에 운전 베테랑이 돼서도 절대 그런 짓은 하지 마라. 알았나?"


    그리고 방금 '내 자식 내가 고생시킨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라는 발언으로 차 안의 분위기를 급랭시킨 아버지의 자세는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고 창밖으로 팔꿈치를 내민 바로 그 자세였다. 아버지의 도발로 인해 엄마와 내가 동시에 말문이 막힌 와중에 눈에 띈 아버지의 자세. 엄마가 계속 아버지에게 나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나름 국면전환을 위해 아버지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에이~! 아부지... 처음 차 살 때 하지 말라고 했던 거 지금 딱 고대로 하고 계시네요...!"


    아버지는 자세를 고쳐 앉았고, 팔을 집어넣었다. 창문을 열어 둔 채로 있길래... 자동차 전용도로이고, 시속 70킬로미터로 주행하고 있어서 운전석에서 조작해서 창문을 닫았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엄마가 아버지에게 아들 고생시킨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그동안 말 못(안)했던 불만을 터트리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평소 같으면 쿨하게 '내가 잘못했다' 했겠지만, 그날은 뭔가 억울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뭔 말을 못 하게 하노... 내가 말하면 그렇게 아니꼽나? 부모가 자식한테 무슨 사과를 하노? 응?"


시대는 변했다


    아버지의 계속되는 옛날 사람 마인드 발언... 아마 술이 문제였을 거다. 엄마도 같이 한 잔 걸친 상태였기 때문에 큰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나름 분위기 전환한다고 한마디 거들었는데... 그게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렸다.


 "아부지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같이 사진 찍자고 아들 불러놓고 말 안 듣는다고 한 대 쥐어박았다가... 아들이 아버지 고소해서 재판받는 세상이에요."


 "...... 나 참! 어허~ 어허~ 어허! 세상이 우예 될라꼬 이라는지... 참 나... 어허~ 어허~"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359663?sid=102


    아버지는 혈압이 오른 듯 연신 '어허~ 어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럼 니도 신고해 뿌라~! 마! 그람 되겠네..."


어! 전혀 다른 길로 새버린 대화... 아버지는 말을 덧붙였다.


 "요즘은 세상이 마! 거꾸로 돌아가서... 지하철에도 전부 어린것들이 노약자 석에 앉아서 폰만 보고 있어요. 자는 척하거나... 말세야. 말세..."


 "아부지 진짜요? 설마... 노약자석이 아니겠죠? 요즘 애들 얼마나 경우 바른데... 아예 앉을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던데..."


 "무슨 소리고... 아니다 마! 전부 어린것들이... 전부 지만 생각하는 세상이 됐다..."


    아, 큰 실수 했다. 이건 지기 싫은 자존심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없는 말도 만들어내서 이기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마음의 표출 같았다. 그래서 그러려니 이해하고 듣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참지 못하고 다시 참전했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남들이 들으면 무시당하기 딱 좋은 말만 골라하시네..."


 "내가 무식해서 그렇다. 어쩔래?"


 "우리 듣는 데서나 카지... 어디 가서 그런 말 절대 하지 마소!"


 "...... 에잇... 무슨 말만 하면 꼭 토를 달지... 내가 말하는 게 글침 싫으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아~ 사건이 커져버렸다. 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두 분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다시 나섰다. 그런데 잠시 후 '그러지 말걸...'하고 바로 후회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던가... 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고 가는 건데....


 "아부지... 잘못 보신 거예요. 요즘 애들 안 그래요... 도리어 저 예전에 지하철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누가 제 머리를 탁 때려서 눈 떠보니까 웬 할아버지가 일어나라고 막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일어났죠..."


 "그기~ 문제야... 아~들이 피곤해서 자리에서 자면서 가고 있으면, 그냥 내비두면 되지... 뭐 을매나 잘났다고... 아~들 머리를 막 때리나... 그기 으른이 돼 가꼬 할 짓이가?"


 "네? 네... 네..."


    이건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이미 당사자는 본인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얼른 백미러로 엄마의 눈치를 살폈는데, 역시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앞뒤가 맞는 소리를 해요... 예?"


 "뭐가~!"


 "아이고 됐어요 됐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애초에 아버지가 '아들 고생시켜서 미안해'했으면 끝났을 일. 그거보다 더 애초에 '아버지 가보고 싶은데 못 모셔다 드려서 죄송해요'했으면 아름답게 마무리 됐을 일...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해요. 여보'했으면 화기애애했을 분위기... 똑같은 사람 세 사람이 차 안에 앉아서 대화를 했는데... 전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 일... 결론! 모두 잘못했음! 아니 누구의 잘못도 아님.


술이 웬수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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