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추구권의 선언
당연히 없겠죠.
대한민국 헌법 10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은 '행복추구권'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은 그 본질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행복'의 사전적 의미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인데,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보장 범위에 대한 이견은 많다.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서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소리다. 어쨌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행하려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불행한 사람은 많다.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굳이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한국의 행복지수가 전 세계 최하위라는 사실은 어린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일까? 이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요즘 많이 꼽는 게 SNS다. 그리고 이 대답의 본질은 아마 '비교' 즉, 상대적 행복일 것이다. 행복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 조사에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연봉 7천 직장과 5천 직장 중에서 어디를 선택하겠냐고, 당연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전자가 100%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붙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평균 연봉 1억인데 7천 주는 회사와 평균 연봉 3천인데 5천 주는 회사 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반반도 아니고 거의 압도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이게 SNS가 불행의 원인으로 꼽히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이 말은 남과 내가 맞지 않아 서로 괴롭고, 괴롭힌다는 말로 많이 쓰이지만,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꼭 사람이 아니라도 요즘은 AI도 있고, 어떨 땐 동물과도 비교가 되니... 인간으로 한정하기 힘들다) 하나라도 있으면 반드시 비교된다는 말로도 쓰일 수 있다. 그리고 비교는 곧 불행의 시작이다.
그래서
요즘의 화두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즉 행복을 추구하려면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진짜 나'를 찾고 키우라고 한다. 그러면 자존감... 어디까지 높여봤는가? 아니 어떻게 높여봤는가? 초여름이면 수영장과 헬스클럽은 북새통을 이룬다. 몸을 만들면 자존감이 올라간단다. 새벽이면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 오픈런을 한답시고 긴 줄이 생긴다. 명품 브랜드에서 수백만 원에 팔리는 가방이 원가는 몇 만 원이라는 뉴스를 본 것 같다.
뭐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할까?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몸을 만든다며 근육에 고통을 선사하고, 오픈런을 한다며 추운 새벽에 길거리에서 노숙까지 불사하고... 남들보다 행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불행으로 밀어 넣고 있는 이런 장면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불행을 추구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훼손하지 않고 보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뭐 나는 저런 생각 없는 사람과는 달라라며 자존심을 세울 텐가?
나는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
행복은 빌드업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순간순간 드는 감정이기 때문에 그냥 느끼면 된다. 그래서 행복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기준이 상향 평준화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비교가 원인이다. 비교는 곧 불행의 시작이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다'는 말이 일부 틀렸음을 이제 밝힌다. 비교는 타인뿐만 아니라 어제의 나와 놓고 하기도 한다.
어제보다 배부르지 않으면 불행하다. 어제보다 시원하지 않으면, 혹은 따뜻하지 않으면 불행하다. 그래서 예전에 진짜 행복하다고 느꼈던 날, 그날의 감정을 이렇게 정리했었다.
"삶이 HISTORY를 벗어나 HAPPENING이 되니, 나는 가벼워졌고 자유로워졌다. 그런 내가 좋아졌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동안 어떤 과정을 통해, 무슨 생각들을 했었는지... 그 기록을 '불행추구권'이라는 제목으로 풀었다. 살면서 고맙게도 '지금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찾아오면, 그럴 자격이 있는지 걱정하지 말고, 내일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지 불안해 하지 말고 흘려보내면 된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던 이유, 사건, 아픔들이 사실은,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