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걱정 말고 연기를 하세요. (말을 하세요.)
보람찬 연기
성우 학원에 다니다 보면 진짜 '열심히' 연기하는 수강생들이 많다. 4~5줄의 짧은 단문인데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열과 성의를 다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쏟아붓는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한 것 같다. 물론 공부하는 자세로는 매우 바람직하다. 아니 꼭 필요한 과정 중에 하나다. '아무리 작은 역할, 배역, 분량이라도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 냄새나는 연기자가 되겠다'는 낭만의 첫걸음이다.
음... 이실직고하자면 내가 그런 스타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준비해서 온 힘을 다해 학원에서 펼쳐 보이고 나면 뿌듯하고 보람도 느꼈다. 물론 칭찬 들었을 때로 한정되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제자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선생님도 감동해서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지 않을까? 다른 수강생보다 좀 더 예뻐해주시지 않을까? 이왕 혼낼 거 좀 덜 아프게 혼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살짝 깔려있었다.
그런데 성우 공부를 오래 하다 보면 정체기 혹은 슬럼프가 반드시 온다. 그리고 이 '열심히' 병이 걸린 이들은 이 난관도 열과 성의를 다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낭만주의 마인드로 돌파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하는 사람은 운이 좋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단 지름길이나 요행이 없는 수행 분야이기도 하고, 이 기간 동안 먹고사는 문제에 멘털 관리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연기자의 로망
현생이 힘들어지면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연기자'가 되겠다는 초심은 자취를 감춘다. 거기에 내 안의 낭만주의가 이렇게 속삭이기도 한다. '네가 성공 못하는 이유는 성공의 문턱 바로 앞에서 포기해서 그런 거야'라며 조바심에 부채질을 한다. 그러면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병까지 더해져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강약중강약' 없이 오로지 '강강강강강'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버텨오던 힘이 툭 꺾이며 좌절하고 현타가 오고 그대로 힘이 빠진다.
여기에 또 낭만주의는 '악으로, 깡으로'를 외친다. 그런 식으로 지망생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심한 경우는 자기 학대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다가 성대결절도 오고, 마음에 병이 들기도 한다. 그때 자주 들었던 피드백이 「자기만족, 자기 좋으려고 하는 연기」, 「잔뜩 힘만 들어가서 듣는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연기」, 「힘조절이 필요한 연기」, 「목 상하기 딱 좋은, 오래가지 못할 연기」였다. 다양한 선생님께 배웠던 만큼 같은 맥락의 피드백을 다양하게 받았다. 하다못해 '연기가 진기명기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꼭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이런 종류의 피드백이나 평가를 받고 있다면 늦기 전에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보기 바란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피드백은 '자위'하듯이 연기한다는 피드백이었다. 여기 그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보컬 코치 영상이 있어서 가져왔다. 성우가 되려면 발성도 중요하지만, 꼭 잘할 필요는 없다는 말에도 적용된다. 다만 마이크를 가까이 쓰려면 쩝쩝거리는 입소리나 다른 소음들이 들어가지 않게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연습은 필요하다.
어떡할까?
보컬은 반주에 소음들이 묻힐 수 있지만, 연기는 그렇지 않으니, 감도 좋은 마이크로 방음이 잘되는 곳에서 '많이' 녹음해 보며 테크닉을 연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고감도 마이크도 많이 있는 것 같고... 성능이 아쉽지만 1인용 차음막 같은 것도 시중에 나와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장 가성비 좋은 이런 장소는 성우 학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유를 갖자. 아니 찾자. 나를 내몰지 않아도 성장, 성공할 수 있다. 힘을 빼고 진정한 나를 찾아야... 내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성우공채합격'이 끝이 아니다. 성우가 되겠다는 지망생의 로망보다 연기자의 로망을 추구해 보면 어떨까? 명문대 입학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닌 것처럼,
성우가 최종목표는 아니다.
https://youtube.com/shorts/psvLx4T9fCs?si=aSiFWrHSdJbcJ1X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