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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는 못되고, 성우학원만 5년 다닌 썰(說)

프롤로그 : 성우(聲優)는 안 됐지만 성우(誠友)라도 돼볼까?

by 철없는박영감

기억으로 10년 전, 그러니까 2013년 여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성우'를 처음 검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장이 너무 바빠서 성우에 대한 동경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2시에 퇴근하고, 토요일도 근무하는 생활을 2년 가까이하다 보니 갑자기 철학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왜 태어났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자존심 세고, 남이 싫어하는 소리 잘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영업직이라니... 그래도 이름 있고 연봉도 높아서 선택한 직장이었다. 연봉은 사회 초년생 치고는 진짜 높았다. 성과급이 나오는 달과 평달의 월급 앞자리 숫자가 달랐으니까... 연말에는 나머지 성과급을 몰아서 줬는데, 그때는 통장이 터질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연봉이 높은 만큼 쓰는 돈도 많아졌다. 주수입원이 용돈에서 월급으로 바뀌자 억눌렸던 욕구가 터져버렸다. 분기에 한 번이었는지 격월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월급이 불규칙하게 들어오니 씀씀이는 자연스럽게 높은 달을 기준으로 맞춰졌다. 적자달의 마이너스를 흑자달에 갚아가며 연말 성과급만 바라보고 꾸역꾸역 다녔다.


쇼맨십은 없었지만 성실하게 다니니 성과도 나오고, 자리도 어느 정도 잡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영업직군은 실적이 매달 집계되어 나오다 보니 상사들의 언어폭력이 굉장히 심했다. 요즘 애니메이션에서 유행하는 이(異) 세계 전생물의 블랙기업들처럼 매일 호통은 보통이었고, 실적이 떨어지거나 목표를 못 채우면 멱살만 안 잡았지 얼굴을 붉히며 죽일 듯이 소리치며 막말을 쏟아붓거나 결재판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때는 자존감이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투자한 주식까지 폭락하며 남은 것은 차 한 대가 전부였다. 자살해서 이(異) 세계로 전생하기 전에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둔 때가 29살 2008년 가을이었다.


퇴직 후, 운 좋게 토익점수도 잘 받았고, 나름 2년간 영업을 하면서 말발도 좀 늘어서 30살이 되던 2009년 01월 01일에 경력은 인정 못 받고 신입사원으로 새직장을 얻었다. 이번에는 대기업이었고 사무지원 직군이었다. 무엇보다 좀 적은 월급이지만 일정하게 들어오는 회사였다. 문제는 인사팀 녀석들이 영업직군으로 합격한 게 아닌데, 이력서를 보고는 영업직을 가야 한다고 했다. 경력도 인정 안 해 주면서 무슨 소린지… 나는 영업은 싫다고, 다른데 어디로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업직군 동기 몇몇이 죽어도 못하겠다며 소위 '배 째라' 식으로 나자빠지면서 인사팀과 부서배치에 대해서 Deal을 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부서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영업 빼고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고 했던 거다. 그렇게 두 번째로 비선호부서인 지방의 공장 생산관리부서로 발령이 났다. 의정부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군대 빼고 경기권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갑자기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서울로 발령 날 수 있는 사내공모가 떴다. 당시에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가려고 했던 나는 '사업기획팀'이라는 곳에 지원을 했다. '기획팀이라면 드라마 같은 데서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 않은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으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지원을 했다. 알고 보니 지원자가 하도 없어서 영업팀을 이름만 그럴싸하게 바꿔 놓은 거였다. 또 속았다. 인사팀 녀석들...! 나중에 친한 동기들이 '전화로 미리 물어봤으면 못 오게 했을 텐데...'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진짜 안되려고 하니, 당연히 알아봤어야 하는 것을 안 알아보고 서울에 가겠다는 욕심만 부리다가 망한 꼴이 되었다. 그렇게 앞에서 말한 새벽 6시 출근, 다음날 새벽 2시 퇴근, 토요일 근무의 지옥이 펼쳐졌다. 처음 부임했을 때는 월요일에 캐리어를 들고 사무실로 바로 출근해서 집에 계속 못 들어가다가 토요일 새벽에 술에 취해 택시 타고 의정부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살다가 철학자가 되었다. 결국 나중에는 또 그만둬야 할 정도까지 내몰렸지만 모아놓은 돈도 적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놔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철학자 시절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디저트 카페를 차리는 꿈을 꾸었다. 고등학생시절에 CLAMP라는 만화 창작팀을 좋아했는데... 주인공들이 멋진 슈트를 입고 웨이터로 나와 동료들에게 차를 대접하며, 시간이 남아서 만든 케이크를 맛보라며 대접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런 장면들이 여유로워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여서 막연히 동경했었다. 그래서 제과기술도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서 나만의 카페를 차려서 손님들께 오늘 연습 삼아 구워 본 케이크를 대접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힘이 드니까 꿈 많던 어린 시절과 친구들이 눈물 나도록 그리웠다. 그런데 꿈을 실현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만찢남이 될 수 없었다. 만화처럼 9등신 비율은 절대 될 수 없고,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래 그럼 목소리라도 멋있게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아역배우가 되려는 꿈이 있었다. 그때도 스스로 외모는 별로라고 생각했고 무대공포증이 생기면서 포기했다. 하지만 성우라면 마이크 앞에만 있으면 되니까 무대에 설 일도 없고, 외모가 떨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떠올라서 잘생긴 목소리의 대명사 '성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우학원을 발견했다. 그리고 노는 토요일에 상담신청을 했다. 그렇게 34살이 되던 해, 성우지망생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약 1년은 서울에서, 4년은 지방에서 서울로 학원을 다녔다. 지금도 성우 공채 시험 공고가 뜨면 집에서 혼자 녹음해서라도 꼭 지원한다. 분명히 떨어질 실력이지만 PD 님들이 나보다 한참 어려서 합격은 힘들 거라는 낙방 핑계를 대면서...


이제부터 성우는 못됐지만 성우학원은 5년간 다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성우지망생 카페에 나이가 많거나 취미로 하고 싶어 하는 분들, 직장인이지만 성우의 꿈을 갖고 있는 분들, 경력단절 여성과 중고등학생까지 성우학원과 성우진로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의 글을 많이 봤다. 그리고 성우학원이 서울에 모여있다 보니 지방에서 성우의 꿈을 키우고 있는 분들도 그렇다. 나는 성우(聲優, 목소리 연기자)는 아니지만 5년간 성우학원을 다닌 경험과 반장을 하며 클래스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다. 그래서 성우가 되는 비법은 없지만 성우가 되는 꿈을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성우(誠友, 정성을 다하는 참된 친구)가 되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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