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직도 나를 천재라고 생각하던데...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는 행복

by 철없는박영감
모전자전


엄마가 아침부터 체중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한숨을 쉰다. 설에 올라간 체중이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라면서 속상해한다. 시베리아 한파가 몰아쳐도 새벽에 일어나서 중량천변을 걸으며 운동했지만 소용이 없다고 한다. 직접 목격한 팩트를 고백하자면, 새벽운동하고 와서 밥 먹고 피곤하다며 낮잠 자다가, 그대로 누운 채로 '미스터 트롯 2'와 '불타는 트롯맨'을 무한반복으로 보고, 저녁에 아버지 먹인다는 핑계로 돼지고기에 반주를 곁들인다. 그러니 살이 안 찔 수가 없다.


그러면서 본인은 점심도 안 먹고 운동도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지냐고 속상해한다. 술을 먹지 말라고 충고해 보지만 하루에 한 번씩만 행복해지자는데 그것도 못하냐며 상관 말라는 식이다. 그래서 강하게 밀어붙이며 어필하지는 못한다. 그러면서 '너도 좀 먹어'라며 공동운명체가 될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조금 먹고 어떻게 사냐고 꼬시는데, 똑같이 상관 말라는 식이다. 모전자전이다.


아들! 이런 것 좀 개발해 봐!


오늘은 레퍼토리가 조금 다르다. 먹으면 살 안 찌고 배만 부르게 하는 알약 없냐고... 좀 덜먹고 싶다고... 영화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오던데 아직이냐고... 나보고 그런 거 좀 개발하라고 한다.


"네? 제가요?"


"그래, 그런 거 좀 만들어봐. 살 안 찌면 좋겠는데 자꾸 먹고 싶어서 큰일이다. 네가 개발 좀 해봐."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난 그냥 평범한 아저씨예요."


"왜! 안돼? 나는 우리 아들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의 기대는 아들이 마흔 중반이 꺾이고 있는데도 그대로다. 엄마에게 자신의 아들은 항상 천재다.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아기 때는 어땠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기세다. 아... 기대는 감사한데... 초등학생이나, 아니 한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마흔 중반에 백수인 아들에게는 좀 무리이지 않을까 싶다.


못 배운 한(恨)


이것뿐만 아니다 엄마는 뭐가 막히면 꼭 나한테만 물어본다. TV를 보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다 나한테만 물어본다. 엄마는 영어를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보다. 영어를 한글과 똑같이 생각하고 스펠링을 보고 읽으려고 항상 시도했다. 영어에 대한 욕구가 강해서인지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면서 스펠링만 보고 척척 읽어냈다. 대부분이 뜻이 없고 한국 상표를 영어로 표기한 것들이었다.


"DAEWOO, 대우" "SAMSUNG, 삼성"


중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우기 전까지는 저런 걸 척척 읽어내는 엄마가 멋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ABCD...'만 겨우 알던 내가 어떻게 읽는 거냐고 엄마에게 물어보면,


"몰라. 그냥 그렇게 읽는 거야."


'쳇, 혼자만 알고 아들한테 그런 것도 가르쳐주냐'며 속으로 치사하다고 생각하고 'ABCD...'만 주야장천 팠다. 그러다가 서울대 다니는 외삼촌댁 형이 놀러 왔다. 이 때다 하고 영어 읽는 법을 집요하게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형입장에서는 굉장히 잘 설명해 준 거였다.


"A는 'ㅏ'나 'ㅐ'로 읽으면 되고, B는 'ㅂ'으로 읽으면 돼... 그런데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아마도 기억 속에 이렇게 대답해 줬던 것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명대답이 없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한글밖에 몰랐던 나는 'DAE'를 '대'로 읽는 데 '~E'가 붙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고, 그 외도 묵음 같은 예외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지금 조카가 귀찮게 질문하는 것처럼 형도 아마 내가 귀찮았을 것이다. 말해줘도 모르면서 질문만 계속하니까...


그러다 중학교에서 영어사전의 발음기호를 배우면서 영어와 한글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고, 단어를 넘어서 문장과 문법을 알게 되었다. 영어 문장을 척척 읽어내는 아들이 엄마는 신기했는지, 초등학교 때의 나처럼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집안내력인가 보다. 이것도 모전자전이다.


가방끈 짧다는 소리는 듣기 싫지만, 공부하고 싶지는 않아!


엄마는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문법을 공부할 생각이 없었기에... 궁금증만 해결되면 통째로 외워버렸고 이해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설명을 잘해준다고 문법을 들먹이며 열심히 가르쳐주지만 엄마는 마이동풍이었다. 응용이 안되고 암기에 한계가 있으니 엄마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했다. TV를 보다가, 길을 가다가, 장을 보다가... 똑같은 질문인지조차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봤다.


설명을 해주면 들어본 기억이 나서 '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도 나름 공부 좀 한다고 하던 때라 중학생 수준에서 엄마의 질문에 척척 답해주었다. 나중에는 길을 물어오는 외국인과 바디랭귀지로 식은땀을 흘려가며 겨우 소통하는 모습이 엄마에게는 대단해 보였는지, 친척들이 모이면 우리 아들 중학교 보내놨더니 지가 알아서 영어도 잘하더라고 자랑을 했다.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며 엄마의 질문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었고, 사실 모르는 것은 뻥도 좀 섞어서... 뇌피셜로 일단 대답하고 검색창을 두드렸다. 이제는 아버지까지 뭐든지 묻는다. 아휴... 무조건 반사 같은 부모님의 질문에,


"나도 몰라요. 내가 뭐 다 아는 줄 알아."


"몰라? 난 우리 아들 천재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우리 아들은 뭐든지 다 알 것 같단 말이지."


문자 보내는 법 겨우 마스터해 놨더니... 카톡이 생겨버렸네...


이것은 사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하면서 자꾸 물어보길래 모른다고 해버렸다. 처음에 핸드폰 문자 보내는 걸로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전차단을 했다. 나는 아이폰, 부모님은 안드로이드라서 잘 모르는 것이 팩트이기도 하다. 요즘은 통신사 대리점에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 같다. 그랬더니 이제는 알아서 카톡도 잘 보낸다. 카톡 사진전송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다.


요즘은 유튜브 때문에 질문폭탄이다. 질문 폭탄은 대부분 가짜뉴스로 판명되는데, 유튜버들 가짜뉴스 생산은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정치 유튜브는 성역이다. 건드리면 큰 싸움 난다.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의견을 물어보면 무조건 '잘 모르겠는데요'이다.


연세가 많아지니 유튜브 보면서 정치인들 욕 좀 하면서 스트레스 푸나보다 하고 넘긴다. 간혹 도가 지나치면 자발적으로 격리되는 방법을 취한다. 저녁마다 알림 설정해 놓은 유튜브 채널에서 띵동 하고 신규 콘텐츠 업로드를 알린다. 그러면 요즘 폰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나보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한다. 나는 반응 자체를 안 하고 가만히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간다. 내가 알림 설정을 해제해 놔도 유튜버들이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딸랑딸랑!’ 이거 한마디면 도로아미타불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었어...


다른 집 얘기도 좀 해보자. 어떤 소리에 아기가 자다 깨서 울면,


"우리 애는 소리에 참 민감해요. 청각이 예민하면 절대음감, 이런 건가? 음악 시켜야 할까 봐요.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든다는데 고민이네요."라고 거의 어김없이 비슷하게 반응한다.


사람 애간장 살살 녹이는 아기의 미소는 생존본능이라는데 엄마, 아빠의 반응은 내 새끼 인기 너무 많아서 나중에 결혼 빨리 한다고 하면 어쩌나를 고민한다. 다른 집을 봐도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겸손해지기는 힘든 일인가 보다. 내 자식은 모두 왕후장상 감이다.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부모님의 기대는 아들에게서 손자들에게까지 넘어갔다. 조카도 엄마와 나를 이어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 집요하다. 유전자의 힘은 무섭다. 그런데 내가 봐도 굉장히 예리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기특하고 대견하고 신기하다. 물론 백 번 중에 한두 번이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새끼'가 최고다.


조카인데도 이런데... 부모님은 손자를 만날 때마다 진짜 똑똑한 것 같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5살이 어쩌다 영어라도 한 단어 하면 우리 집안에 용 난 거 같다고 난리가 난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가 키우는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중년의 백수아들에게 아직도 무조건적인 기대를 보내는 부모님 덕에 마음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을 보니... 나한테 그만 기대하라고 투정을 부리지만 싫지는 않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늘 밑에서 아직 아픈 손가락 같은 새싹이지만


부모님의 기대는 나를 버티게 하고 자라게 한다.



P.S :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는 행복은 브런치의 작가님들이 제일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제가 라이킷을 안 누르고 댓글을 안 달아도 기대하고 있는 마음은 변치 않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이킷을 안 누르는 이유는 글을 읽지도 않고 제목만 대충 보고 라이킷을 누르는 저를 발견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송구스럽지만 '라이킷 알림을 보고, 제 글도 봐주세요'하는 부담도 드리기 싫었습니다. 라이킷과 구독은 안 눌러도 글은 꼭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재성이 각각의 글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바라보면 행복합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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