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안 먹고 버티는 이유
가족이라도 떨어져 살다 보면 불편한 건 사실이야!
전주집을 떠나, 의정부 본가에 며칠째 와있다. 둘째 조카 돌잔치가 토요일이고 일주일 후면 설연휴다. 돌잔치도 보고 설까지 쇠고 갈 예정으로 왔다. 본가는 부모님 두 분이 살기 편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내가 가면 잠자리며 화장실이며 조금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화분도 많고, 두 분이 살아온 날만큼 잡동사니도 많다. 이미 뒷베란다와 방 한 개는 잡동사니들에게 내준 상태이다.
이번에 와보니 문간방 하나가 더 잡동사니들에게 뺏길 지경이다. 나도 허리디스크로 많이 못 움직이고, 엄마도 연세가 있으니, 돈을 들여 사람 불러서 정리하자고 해도 잡동사니 아니고, 혼자 치울 수 있다고 한다. 날 따뜻해지면 슬슬 치울 거라고 하는데 그렇게 봄이 여러 번 지나갔다.
거기에 아버지는 멀쩡한 걸 왜 버리냐면서 못 버리게 하고, 쓰레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밖에서 이것저것 가져다 보탰다. 나도 한몫했다. 10년 전 자취 초보생 시절, 지금도 조금 그런 면이 남아있지만, 자취생활의 로망이라면서 쓰지도 않을 것들을 많이 사모았다. 그때 이사하면서 가져다 놓은 짐들이 아직도 있다. 그냥 버리라고 해도 언젠가 쓸건대 왜 버리냐며 상자에 담겨 구석에 처박혀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현재는 방 한 개, 화장실 한 개, 거실, 주방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면 안방을 잠자리로 내어주고, 두 분은 거실에서 생활해야 한다. 아파트인데도 20년 넘게 살다 보니, 바닥 장판은 꺼져서 쿠션감이 거의 없고, 벽지도 누렇게 바랬다. 새로 하려고 해도 집안에 잡동사니들을 치울 엄두가 안 난다. 거기다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공사비용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가족들 얼굴도 보고, 특히 조카들, 오랜만에 명절도 보낼 즐거움이 더 커서 2주 예정으로 와있다.
가족이라도 떨어져 살다 보면 안 맞는 것도 사실이야!
코로나 시국으로 통화로 안부만 묻다가 오랜만에 얼굴 보고 대화를 하니 즐거우셨나 보다. 만날 두 분이서 지지고 볶고 하다가 아들이 와있으니 집에 생기가 돈다고 좋아한다. 또 아들 온다고 음식을 이것저것 많이도 해놨다. 어차피 몸이 안 좋아서 치료 중이라 기름지거나 맵고 짠 거 못 먹는데, 신이 나서 하다 보니 김치까지 새로 담았단다.
만든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맛이라도 봐야지 했는데. 맛만 봐도 배가 부르다. 조금씩 조심해서 천천히 먹으며 주의했는데도 속이 안 좋다. 정확히는 몸이 안 좋다. 붓고,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빠진다. 몸이 힘들어져서 안색이 안 좋아지니 어디 안 좋냐고 바로 묻는다. 증상 설명하기 귀찮아서 속이 좀 안 좋다고 대답했는데, 엄마는 바로 소화제부터 찾는다.
소화제도 알약과 액상을 동시에 먹어야 한다며 '위청O' 한 병과 '훼스O' 두 알을 내민다. 방금 밥 먹었는데 바로 소화제를 먹으라고 하는 것이 너무 이상하지만 그냥 알았다고 하고 옆으로 밀어놓았다. 두통이 계속되고 기운이 없어서 먼저 자러 간다고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진짜 뭐가 안 좋은 느낌! 건강 염려증인가?
잠시 후에 왜 약을 안 먹었냐며 다시 침대옆으로 약을 가져다 놓는다. '아~ 원인은 그게 아닌데... 기름지고 맵고 짜게 먹어서 그런 건데...' 잠든 척하고 잠을 청한다. 일찍 잤더니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와는 다른 느낌으로 몸이 안 좋다. 이번에는 또 다른 두통이다. 어질어질하다. '진짜 뭐가 안 좋은가? 대중교통 타고 오면서 코로나라도 걸렸나?'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 간수치가 400까지 높아졌다. 이후로는 추가접종은 당연히 안 했고, 사람들과 접촉을 최소화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오랜만에 장거리 외출인데 혹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자 엄마는 다시 소화제를 권한다.
이번엔 설명을 했다. 소화가 안 되는 게 아니고 머리가 아프다. 혹시 코로나 일까 봐 걱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은 이미 한 달 전에 확진이 됐다가 나아서 괜찮고 진단키트 남은 거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해서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한 줄이다.
아 글쎄! 예민 폭발
'물갈이를 하나? 여독이 덜 풀렸나?'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누워있는데 이번에는 두통약을 들고 들어온다. 머리 아프면 이거 한번 먹어보자고 하는데, 순간적으로 열이 확 뻗쳤다.
"아니~ 간이 안 좋아서 병원에서 비타민도 못 먹게 하는데... 두통약을 어떻게 먹어요!"
아이고 이러면 안 되는데, 두통 때문에 예민해져서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는 '아참 그렇지' 하면서 얼른 약을 물린다. 짜증이 폭발하고 나니 머리가 더 아프다. 기운이 없어서 계속 누워있자 부모님 걱정이 더 커졌다.
전화로 얘기만 들었지 진짜 눈앞에서 저렇게 몸져누워있으니 심란해졌나 보다. 이번에 아버지가 머리를 서쪽으로 두지 말고 동쪽으로 두라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워있는 머리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옆으로 돌아 베개에 귀를 묻고 누워있는데 '윙~'소리가 들린다. 굉장히 거슬리고 머릿속 뇌를 울리는 소리다. '뭐지? 혹시?'
나는 전자파에 굉장히 예민해서 전기장판을 절대 못쓴다. 전기장판에서 자고 일어나면 딱 지금 같은 증상이다. 침대에 전기장판이 깔린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해서 엄마에게 물었다.
"어! 돌침대라서 전기를 쓰기는 하는데 꺼놨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래요? 이상하네. 아... 정말 몸상태가 말이 아니네... 그런데 혹시 코드 꽂아놨어요?"
"코드야 항상 꼽혀있지. 그런데 안 켜고 꺼놔서 괜찮을 건데."
잡았다 요놈! 돌침대를 셋이서 붙어 겨우 살짝 옮겼다. 그리고 코드를 뺏다. 그제야 누워도 소리가 안 난다.
"코드만 꽂아둔 게 느껴진다고? 그래? 우리 아들 너무 예민하다."
어쨌든 그 상태로 자고 나니 두통이 사라졌다. 밥도 차려 주는 대로 안 먹고, 먹던 식단대로 먹으니 컨디션이 좋아졌다. 예전 같지 않은 아들의 몸상태에 놀라면서도 괜찮아졌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한다. 사실 그동안은 다 느끼면서도 젊음으로 그냥 참고 걱정 안 시키려고 말 안 하고 넘어갔는데 몸상태가 나빠지니까 이제는 그냥 못 넘긴다. 엄마는 계속 '우리 아들 이렇게 안 예민했는데...'라고 걱정한다.
엄마가 주면 다 먹어요?
대학생 때, 엄마는 홈쇼핑 건강식품에 한참 빠져있었다. 클로렐라가 유행이었고, 가족들 몸 챙긴다고 식사 후 클로렐라 한 알씩 먹였다. 그때는 하라는 대로... 별 상관 안 하고 했는데, 학교에서 갑자기 위경련이 일어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소화제를 먹어도 안 듣고 어쩔 수 없이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뭐 먹었냐고 묻는다.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엄마가 아침에 클로렐라를 줬다고 얘기했다.
"엄마가 주면 다 먹어요?"라면서 클로렐라 먹고 물 많이 안 마셔서 그렇단다.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몸이 아파서 신경 쓰기 싫어서 그냥 집에 돌아와서 누워있었다. 그때도 엄마는 소화제를 들고 왔다. 나도 별말 안 하고 병원 다녀왔으니 좀 쉬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원인은 따로 있는데, 원인을 없애는 것이 더 맞는데, 자식이 아프다고 하니 증상만 보고 거기에 맞춰 약을 가져온다.
부모님, 특히 엄마가 뭔가 해주는 것을 안 하겠다고 하면 불효자가 된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래서 조금 안 좋아도 꾹 참고 그냥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다 자식 위하는 마음에 하는 거지만, 모성애로 행하는 모든 것이 자식에게 이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참다 참다 거부했을 때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 하면서 서운해하면, '자기 마음 편하자고 자식한테 이래도 돼?'라는 생각도 든다. 감성보다 이성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모성애, 부성애는 마흔이 넘은 아들도 4살 아기로 보이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어쩌면 떨어져 사는 것이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부모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