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 암흑기

금수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은 충분히 황금빛으로 채워져 있다.(인터로그)

by 철없는박영감
Re 1998


요즘은 뉴스를 잘 안 본다. 사건, 사고는 판타지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린 지 오래고, 정치권은 오래전에 포기했다. 그나마 생활, 경제 뉴스는 조금씩 챙겨봤는데... 그마저도 뭔가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다. 1997년 국가 부도의 위기를 맞으며 우리나라가 IMF 구제 금융을 받는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연신 터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났고, 명예퇴직, 정리해고, 구조조정으로 많은 이들이 같은 신세가 되었다.


98학번 새내기가 되어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TV에서 봤던 '캠퍼스의 낭만', '지식의 상아탑', '먹고 대학생', '미팅' 같은 로망은 사라지고 없었다. R&D 분야가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철퇴를 맞으며 많은 연구원들이 해고됐고,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해졌다. 이공계 학생 대부분은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취직이 잘되는 경영, 경제학과로 몰렸다. 지금의 '문송합니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도 은행권과 공기업은 철밥통과 고액연봉으로 최고의 인기 직장이었다. 초 엘리트이거나 백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비록 월급은 적었지만, 철밥통에 그나마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젊은이들이 청춘을 바치는 것은 당연했고, 이는 곧 사회현상이 되었다. 탄탄하던 중소기업의 줄도산으로 안 그래도 바늘구멍인 대기업 취업으로의 쏠림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지금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 저출산을 걱정하지만 살아남기도 힘든 시기에 결혼과 출산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적성, 꿈, 희망 같은 이야기는 사치였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꼰대라고 괄시받는,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것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이었다. 걱정되는 것은, 아직은 많이 들려오지 않지만 (뉴스를 안 보는 주요 원인이다), 당시 표현으로 '일가족 동반자살', 요즘 표현으로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혹은 '가족 살해' 소식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안 맞으면 빨리 이혼해 버리라고 하고, 결혼해도 자식 낳지 말고 살자고 하는 것은 암흑기를 거쳐온 다양한 생존방식들이다. 요즘말로 '각자도생'. 저출산, 가족해체는 지금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25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여기저기서 '각자도생'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런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할수록 문제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 번 IMF를 극복하고 세계 무대에서 환영받는 국가가 된 경험이 있다.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전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저력을 보여준 나라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온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붉은 물결로 응원하는 장관을 이뤄낸 나라이다. 우리는 "K-"라는 고유명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저력이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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