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살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일상으로의 초대
유치원이 시작이었다.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까지 어딘가에 도착해있어야 하는 의무가 지어졌다. 선택한 적은 없다. 그냥 남들도 다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면 덜 힘드니까, 정확히는 아무 의심 없이 당연히 해야 하는, 마치 숨 쉬듯 생존본능으로 생각했다.
잠깐 방학이나 휴가 때 의무에서 벗어날 기회가 오지만, 만약 다른 시기에 시도하면 불량청소년, 부적응자, 외톨이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찍혔다. 이 의무는 이른 시간에 완수하면 할수록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시작하면 할수록 정상참작이 됐다.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매일 의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도록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0교시 보충수업을 위해 아침 7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했다. 통학시간이 1시간 이상 걸려서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아침밥을 먹어야 두뇌가 활성화된다고, 새벽 2시부터 식사준비는 물론 도시락도 3개씩 쌌다. 자율학습까지 끝내고 집에 오면 11시가 넘었다. 불량배들에게 잘못 걸려 돈을 뺏긴 후, 매일 아버지가 마중을 나왔다.
첫 직장은 의정부에서 대방동까지 출퇴근을 했다. 8시에 아침 조회를 꼭 참석해야 했는데, 영업직이어서 차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막히는 시간을 피해서 출근하는 시간이 새벽 4시였다. 퇴근은 동부간선도로가 늦은 시간까지 막혀서, 매번 꾸벅꾸벅 졸면서 야간운전을 했었다. 사고 안 난 게 천만다행이다. 엄마는 새벽 부지런함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저녁에 무사히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느라 여러 날 밤잠을 설쳤다.
우주의 교집합
그래도 이때까지는 엄마와 거의 동일한 우주에서 살았던 것 같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회사 취직해서...’까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아니 엄마가 나의 우주로 자신의 우주를 밀어 넣었던 것 같다.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서...’부터 인 것 같다.
‘좋은 여자 만나서...’까지는 어떻게든 교집합을 갖고 비슷한 우주에서 살았는데, ‘결혼해서...’부터는 엄마의 우주를 튕겨냈다. 나는 자발적인 비혼주의자다. 하고 싶은 일과 가족(아내와 자식)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다 내려놓고 훌훌 떠나 새로운 길을 가고 싶을 때, 부양의무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이 싫고, 이런 나 때문에 누군가를 마음고생 시키는 것도 싫다. 부모님 마음고생도 있겠지만 그나마 두 분이 감수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분명히 비혼을 선언했음에도 부모님, 특히 엄마는 못 들은 척한다. 아직도 어떻게든 자신의 우주를 밀어 넣으려고 기회를 엿본다. 아니 밀어 넣는 다기보다는 약한 부분으로 주입을 하고 있다.
엄마의 행복
요즘 엄마의 최대 관심사는 내 건강이다. 아니지 얼마 전에 ‘미스터트롯 2’와 ‘불타는 트롯맨’에 밀렸으니, 세 번째 관심사이다. 건강 악화로 퇴사하고 나서 얼마까지는 최대 관심사였는데, 한량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회복돼 가는 것이 눈에 보이니 세 번째로 밀렸다.
건강도 조금씩 나아지고, 외부활동으로 돈을 조금씩 벌어야 할 것 같아서, 슬슬 시동을 걸려고 여러 가지 구상을 하다가 엄마에게 말을 해본다. 먼저 기술을 배워두면 평생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내 사주에 나무(木) 기운이 부족해서 그쪽 관련 된 일을 하면 성공한다는데.... 목공기술을 배워볼까?"
"일단 건강부터 챙겨, 허리도 아픈 애가 무거운 연장을 어떻게 쓸려고 그러니? 좀 더 쉬면서 몸부터 추슬러"
우와 감동이다. 아직 좀 더 놀아도 되려나 보다. 기쁜 마음에 빙긋이 미소 지으며 다시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엄마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니 마음 편히 건강회복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3월에 마지막으로 검사해 보고 이상 없으면 치료를 그만해도 되겠다고 했다. 또 다른 구상을 시작했다.
"엄마, 우리 동네 근처에 혁신도시가 생겨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더라. 거기서 테이블 5개 정도 놓고 작게 저녁에만 장사하는 선술집을 하면 한 테이블에 5만 원씩 10팀만 받아도 50만 원이고, 한 달이면 천만 원이잖아. 20%만 남겨도 2백만 원이니까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휴~ 네 성격에 장사는 못해! 나는 우리 아들이 직원 두고 일하는 사업 하면 좋겠어!"
"엄마 사업은 더 스트레스받아. 난 그 스트레스 감당 못 해"
"그것도 그렇네. 그건 조금 더 나중에 생각해 보고... 난 우리 아들이 그냥 건강했으면 좋겠어"
살짝 여기서부터, 건강을 바라는 마음이 순도 100%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나도 ‘맞아 내가 무슨 장사야’라고 생각하며 포기한다.
나의 행복
그리고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고, 살림도 하면서 평범함 일상을 지내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생각들을 블로그에 남기면서 글 쓰는 재미를 느꼈다. 계속하다 보니 작가의 꿈이 생겼다. '결혼은 안 할 거라서 자식도 없을 테니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책을 써보자. 자식 같은 책을 남기자'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 작가가 돼 볼까?”
“응? 요즘 건강은 좀 괜찮니?”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일단 작은 실행을 했다.
“엄마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응. 그런데 요즘 건강은 괜찮지? “
반응이 예상을 많이 벗어나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사실 글을 가족에게 보인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좀 더 무엇인가를 이뤄 놓고 확실히 주장하고 싶었다.
“엄마 브런치 작가가 됐어요!”
“응? 그게 뭐야? 작가? 그럼 돈 버는 거니?”
어! 살짝 기죽이는 반응이다. 그래도 합격의 기쁨이 남아있어서 설득을 시작했다.
“아니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고. 잘 되면 책도 낼 수 있고... 하여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반응은 영 시원치 않다.
“그래. 건강 챙겨가면서 해. 먹는 거 잘 챙겨가면서..."
예상은 했지만 아! 실망, 실망, 대실망! 취미생활정도로 등급판정 종료다. 불타는 트롯맨은 꿈을 위해 고생했던 출연자 사연에 눈물짓고, 합격버튼 안 누르는 심사위원한테 빨리 누르라고 호통치고, 공연 보며 잘한다고 박수도 치면서 아들 꿈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요즘은 일부러 재방송 시간에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글' 쓰고 온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이거 열심히 올려서 '베스트셀러 작가' 될 거라고 얘기하고 다닌다. 반응이 너무 무덤덤하니까. 허황된 꿈인 것을 알면서도 오기가 생긴다. 나 이런 사람 될 거라고 아직도 설득하는 중이고 자식의 건강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밀려오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동상이몽
여태까지 몰랐던 세계로 자식이 들어가려고 할 때 부모는 어떤 느낌일까? 지금 엄마의 반응은 이런 생각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닐까? 학업도 집에서 보내주는 대로... 결혼도 집에서 정해준 대로... 살림도 남편 직장에 따라... 인생에 정답이 있고,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살아오셨으니 자식이 가고자 하는 길이 미지의 영역이고 불확실한 영역이면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본인도 가본 적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길이 있는지 꿈에도 몰랐던 세계이다. 친척이나 친구 자식들 중에서도 못 들어본 세상이다.
"나는 그렇게 못살았는데...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
이런 말씀을 자주 했는데... 나한테는 꿈을 이루는 것이 행복인데, 엄마한테는 자식이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행복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