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 (9)
作名, 영혼을 담다
이름은 단순한 식별자가 아닌, 사람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름은 우리의 자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만큼 이름은 중요하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갖는 이름은, 아쉽게도 본인에겐 선택권이 없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과 기대, 그리고 앞으로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등, 소중한 의지가 담긴다. 그래서 부모의 이름 짓기는 자신들의 영혼을 후세에 전달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다. 이때부터 부모는 기꺼이 자신들의 이름을 포기하고 앞으로 '누구 아빠, 누구 엄마'로 불릴 각오를 한다. 이때의 이름 짓기는 인간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아이는 자라서, 대를 이어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이름의 중요성은 다음 사례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부 연예인은 개명까지 해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을 시도하기도 하고, 소위 멀티 엔터테이너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활동 분야에 따라 예명, 활동명을 달리해 다양한 정체성을 갖기도 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인들은 이름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외국어로 된 세련된 이름과 매칭되어 있던 유명인의 본명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크게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이런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아마 '앙드레 김'이었을 거다. 이를 보면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呼名, 영혼을 울리다
이름은 사람의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그 사람의 내면과 외면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름은 누군가가 불러줄 때, 그제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름이 호명될 때, 그 소리의 파장은 나의 존재를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확고히 해주는 중요한 순간이다. 아무리 소란스럽고 혼잡한 상황에서도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됐음을 알아챈다. 가끔은 아주 놀랍게도, 부르기도 전에 그럴 낌새를 먼저 감지하고 반응을 하기도 한다.
즉 이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정의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은 단순히 나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의 궤적을 담은 그릇과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은 우리의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로서 기능한다.
揚名, 영혼을 드러내다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한 이름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이름을 통해 역사를 남긴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그 사람의 삶과 업적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이며, 이는 영혼이 세상에 울림을 주는 순간이다. 예를 들어, 역사를 빛낸 위인들이나 문화 예술계의 거장들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때마다, 그들의 영혼은 계속해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히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반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을 통해 기억되고, 이름을 통해 영원히 살아간다. 이름은 우리의 영혼을 담고,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창구인 것이다.
汚名, 영혼을 가리다
그러나 때로는 이름이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부정적인 사건이나 실수로 인해 이름이 더럽혀지고, 그 결과로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이름은 그 사람의 영혼을 가리는 그림자가 돼버린다. 역사를 살펴보면, 잘못된 선택이나 오해로 인해 이름이 더럽혀진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가며, 그 이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애쓰지만, 이름에 얽매여 본래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어렵게 된다. 또한 후손까지 고통받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정의의 심판, 역사의 심판'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두가 수긍할 만한 제대로 된 심판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은 지 맘대로 흘러가버린다. 회복 불가능한 가혹한 처벌을 되도록 피하는 이유가 이 때문 아닐까?
陋名, 영혼을 억압하다
또한 잘못된 이름이나 부정적인 별명(陋名)은 사람의 영혼을 억압할 수 있다. 이런 이름들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이름들은 때로는 사회적 낙인이 되기도 하며, 그 사람을 특정한 틀에 가두어버린다. 특히 이름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지었을 땐,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름이 특정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그룹과 연관되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 과거 '대깨문'이나 요즘 '(정당 기호) 찍', 혹은 과거 'X세대'나 요즘'MZ'와 같이 특정 집단이나 세대를 대표하는 이름들은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다. 또한 '된장녀', '한남'과 같은 이름들은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와 관계없이, 고정된 이미지를 강요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을 숨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이름은 때로는 놀림과 차별의 도구로 사용되며, 그 사람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이름들은 또한 사회적 관계에서의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부정적인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하거나 멀리하게 되며, 이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억압적인 이름들은 그 사람의 영혼을 짓누르고,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鮮明, 영혼을 밝히다
예쁜 이름만 짓자는 소리는 아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자비'의 관점으로 봤을 때,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름이 가진 힘을 깨닫고, 그 힘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앞으로 남의 말을 경청하며 조화롭게... 화음을 넣으며 아름답게... 그렇게 서로의 영혼을 울리는 순간이 만들어 지길 바란다. 이름은 우리의 시작과 끝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이름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우리의 삶 속에서 이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