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의 서사 (1)
오늘 조금 이상한 뉴스? 아니지, 인터넷 방송을 보았다. 음...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이게 잘못인지조차 모르고 지내다가 이번 사태로 인해 ‘아, 이게 잘못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흔히 남편들이 집에서 정치 이야기를 할 때면, 은연중에 여성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전제를 디폴트(Default)로 깔고 이야기한다. 그나마 순화된 표현이 그렇지, 실제로는 정치 문외한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배우자와 정치적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와이프가 질문해서…’, ‘물어봐서…’로 묘사하는 경우가 잦다. 마치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태도다.
더 나아가, 많은 시사 프로그램을 표방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여성 패널을 하대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때로는 병풍이나 들러리, 혹은 더 심하게는 개념 없는 질문을 하는 어리석은 백성(愚民)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재미라는 이유로...
이번 대선 후보 토론에서 이준석 후보의 성폭력적 언사를 접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남자였고, 다수였으며, 약자는 아니었기에...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뒤늦게라도 깨닫게 된 것에 반성하며,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밀려온다.
평소라면 그냥 일상적인 표현 중의 하나라고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후보자 토론회를 지켜보며 확연히 깨달았다. 성인지 감수성...! 하나하나의 표현이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분명히 체감한 것이다. 게다가 이후로 이어진 이준석 후보의 발언과 태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데?’
이런 반응. 얼마나 많은 약자와 소수자가, 강자와 다수자의 인지하지 못하는 악행에 고통받아 왔을까?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다룬다. 악역 없는 이야기가 심심하다고 우리는 자극적이고 입체적인 악을 창조한다. (요즘엔 정말 순수한 惡을 그려내는 작품도 있어서 그 비인간성에 섬뜩할 때가 많다.) 그 일환으로 惡에게 서사를 부여한다. 즉, 악의 행동에 당위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악에서 잘못을 제거한다. (De Fault)
그러면 현실에서 행동가들은 악을 미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솔직히 이런 주장에 대해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 아닌가?’, ‘시청 등급도 나눠져 있는데 표현의 자유를 너무 침해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제, 정말 무방비 상태에서 아무런 여과 없이 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처럼 악의 서사를 한번 추적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