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의 서사 (4)
성장과 타락의 경계 : 주화입마(走火入魔)
무협소설의 핵심은 무림지존(武林至尊)을 향한 권력 투쟁이다. 주인공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고된 수련을 하고, 극한의 싸움을 거치며 성장해 나간다. 폐관수련을 하고, 도장 깨기를 하며, 비무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리는 여정을 걷는다. 이 모든 과정은 성장과 승리의 서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공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외부적인 충격이나 내부의 동요로 인해 폭주하는 순간, 그는 스스로를 잃고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 순간이 바로 서사의 전환점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무협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도 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구조를 목격한다. 이를 경제적 논리로 포장하면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될 것이고, 사회적 구조로 설명하면 파레토 법칙(80/20 법칙)이 되며, 철학적 논리로 정당화하면 '희생'이라는 명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악(惡)의 서사다.
성장 속에 숨겨진 희생과 타락 : 낙수효과와 파레토 법칙
낙수효과는 경제학에서 상위 계층의 성장과 성공이 결국 하위 계층까지 혜택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위 계층의 권리강화로만 끝날뿐, 하위 계층이 희생되는 구조로 많이 작용한다. 파레토 법칙(80/20 법칙) 역시 상위 20%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불균형적인 구조를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권력자와 성공한 이들이 대부분의 자원을 차지하고, 나머지 80%는 생존을 강요당하는 형태로 이어진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는 거꾸로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독점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의 서사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정당화된다.
"더 강한 존재가 등장하면, 희생되는 자들이 생긴다."
"개인의 희생이 결국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사실상 보호를 명목으로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조직폭력배의 범죄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협소설을 읽다가 가끔씩 드는 불편한 감정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협소설의 배경이 되는 강호(江湖)는 사실상 무력을 사용한 강압적 권리 행사가 횡행한 원시적인 사회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이는 악행을 정당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 선(善)으로 포장될 때
무협소설에서 주화입마를 겪는 인물은 종종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도 묘사된다. 강해지기 위해 수행을 하다가 폭주하고, 결국 악행을 저지르며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그들은 본래 선한 존재였을지라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타락을 겪으며 필연적인 희생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논리가 선(善)으로 포장되는 순간을 목격해 왔다.
산업혁명 초반, 노동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며 "경제 발전을 위해선 불가피하다"라고 했던 논리로 세워진 많은 위령비,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이들을 "국가를 위한 영웅적인 행동"으로 미화한 프로파간다, 사회적 불평등을 "성장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로 설명하는 정책들... 불행한 것은 이러한 논리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필연적인가? 아니면, 우리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가? 성장은 반드시 타락을 동반해야 하는가? 아니면, 희생 없는 성장이라는 길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미 산업화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희생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산재사고, 차별, 불평등... 우리는 과연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