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서사

惡의 서사 (3)

by 철없는박영감
아름다움에서 악으로


꿈을 향해 가는 기분은 도파민 분비 그 자체일 것이다. 흥분되고 가슴 떨리고 기분 좋은 경험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고, 없던 힘까지 전부 발휘되는 각성 상태가 된다. 흔히 이런 꿈을 '로망'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로망(roman)은 프랑스어, 독일어로 소설의 한 장르를 말한다. 좁게는 중세 기사의 모험과 사랑을 담은 기사도 문학, 넓게는 모험과 공상이 가득한 판타지적 요소가 주가 된 소설을 말한다. 그래서 로망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혹은 이루기 매우 어려운 꿈을 향하는 남성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낭만(浪漫)이 있는데, 한자다. 영어 romance, 한자어 낭만, 그리고 프랑스어 roman의 발음이나 형태가 비슷해서 일본식 표기일 뿐, 같은 뜻이라고도 하는데... 글쎄다. 여러 주장이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어쨌든 실 언어생활에서는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로맨스, 즉 낭만은 감미롭고 감상적이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낭만주의'는 '낭만'이라는 이름과 달리 점차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로망'의 길을 걷게 된다.


낭만주의의 타락 : 전체주의의 도구가 되다


낭만주의가 발전하던 초기, 그것은 신고전주의와 계몽주의라는 고리타분함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낭만주의는 점차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변질되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1789)과 나폴레옹의 군정이 펼쳐지면서, 낭만주의적 감성이 점차 집단적 정체성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혁명이 진행될수록 개인의 감성은 국가적 신화화로 변질되었고, 민족주의적 정서를 고취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민족주의적 낭만주의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기반이 되었다. 예술과 문학, 철학이 단순한 개인의 표현 수단이 아니라, 집단을 규합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체주의적 사고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본래 감성과 자유를 추구하던 사조가 권력과 정치적 이념과 결합하며 역사의 거대한 악(惡)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현재 초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반복 가능성


현재, 유튜브 등 SNS를 통한 '병맛, MEME'이라는 키워드로 퍼져나가는 온갖 B급 문화는 낭만주의를 많이 닮아있다. 그리고 개인화를 넘어선 초개인화시대가 온다는 미래 예측 또한 낭만주의 사조가 발전하던 시기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전체주의적 사고가 등장할 위험이 존재한다. 과거에도 개인의 자유가 강조될 때, 그 반작용으로 강한 집단주의와 전체주의가 출현했던 역사적 패턴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의 뉴스들을 보면 이미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온갖 갈라 치기와 편 가르기, 박멸을 부르짖는 생존경쟁,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약자를 짓밟는 잔인함까지... 우리는 과연 낭만주의가 걸었던 길을 반복하게 될 것인가? 예술과 감성, 개성이 순수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사회적 흐름 속에서 강한 집단적 정체성으로 변질될 것인가? 이 서사는 단순한 역사적 고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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