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화의 서사

惡의 서사 (9)

by 철없는박영감
그는 단지 사라졌다...


악은 침묵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악은 언제나 격렬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폭력, 고통, 혐오의 이미지 속에만 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악은 말없이 스며든다. 침묵 속에 숨은 악은 오히려 선의 얼굴을 하고 세상에 안착한다. 그 침묵은 누구도 해치지 않기에 의심받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기에 환영받는다.

그래서 악은 침묵의 옷을 입고 나타나며, 조용한 선의 가장자리를 따라 오래 지속된다. 공적인 폭력보다 사적인 회피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우리가 악을 공격성으로만 인식하는 순간, 침묵은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침묵에 동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끝내 마주하지 못한다.


선한 시민의 조용한 죽음


주인공은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그는 질서를 따르는 ‘선한 시민’이었다. 규칙을 지켰고, 타인의 고통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존재를 최소화하려 애썼다. 삶이 더는 회복되지 않을 때, 그는 말없이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그 선택은 조력사 혹은 안락사로 불린다. 자율적인 판단으로 보이며,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결정이다. 의료 시스템은 이를 “고통을 줄이는 윤리적 권리”로 포장하고, 사회는 그 조용한 죽음에 안도한다. 아무도 해치지 않았기에 선하다는 믿음은 죽음 앞의 침묵을 이상처럼 둔갑시킨다. 그리고 그 이상은 체제의 안정 속에서 자발적 소멸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며, 삶의 경계마저 기술로 조율 가능한 것으로 환원시킨다.


가장 최악인 점은 '순교자'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버려진다는 점이다. 고통 앞에서 마땅한 결단을 내렸다는 형식으로, 그 죽음은 윤리적 자산처럼 유통된다.


이제 사람들은 스위스로 몰려들고 있다.


"그 침묵은 누구의 선택이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그 침묵은 정말 그의 윤리였을까, 아니면 사회가 안심하고 싶어서 유도한 선택이었을까? 그는 분명 스스로를 지웠다. 그러나 그 침묵을 가능케 한 구조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려는 사회의 욕망이었다.


조력사는 자기 결정권의 극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권리는, 사실 체제가 고통을 ‘정리’하려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선한 소멸’이라 부르며,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선한 시민이 사라지는 이 시스템이 어떤 종류의 악을 구조화하고 있는지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마치 그것이 유행처럼, 혹은 패션처럼 스쳐 지나가는 시대유감일 뿐이라 여긴 채...


시대는 늙고 있고, 악은 그 주름진 침묵 위에 자리 잡는다.


침묵 앞에 남겨진 질문들


그는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라짐은, 모두가 안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침묵은 정말 ‘자기만의 윤리’였는가?
아니면 ‘사회가 원하는 침묵’이었는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정말 침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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