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의 서사

惡의 서사 (마지막)

by 철없는박영감
공정이라는 시장의 윤리


“그는 공정을 외쳤다. 그런데 그의 공정은, 반사이익을 잃지 않기 위한 방식이었다.”


공정은 이제 윤리가 아닌 이권의 통화가 되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공정"이라는 단어가 실릴 때, 그 이면에는 잃어버린 반사이익에 대한 분노가 숨어 있다. 그 분노는 제도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라진 특권을 정당한 권리로 둔갑시키는 감정의 논리다.


‘역차별’이라는 구호 역시, 공정 담론 속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환상이다. 그 말은 마치 기존의 구조가 정상이고, 소수의 균열이 ‘부당함’인 듯 말하지만... 그 ‘기존’이야말로 공정이 침투하지 못한 기득권의 섬이었다.


여우와 호랑이


호가호위라는 사자성어 속 우화에서 여우는 말한다.

“내 권리는 빼앗겼다. 역차별이다.”

하지만 그 권리는 원래 불투명한 특혜와 배타적 권력의 부산물이었다. 그가 ‘공정’이라 부르는 것은, 기득권의 은폐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잃었다는 억울함이다.


호랑이는 말한다.

“공정을 보장하겠다.”

그의 선언은 마치 모두에게 기회를 나누려는 의지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는 기득권자들이 세운 장터의 관리자일 뿐이다. 그 시장에서 약자들은 출입은 허락되지만 참여는 금지된 손님으로 존재한다. 호랑이의 공정은 공정해 보이는 무대의 관리, 여우의 공정은 기득권에 대한 보상 심리에 불과하다.


도덕이 진열된 시장


미술 박람회를 흔히 Art Fair라고 한다. 직역하면 예술적 공평함이라고 할까? 공식적으로는 예술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는 기회를 선사하고, 신진 작가와 숨어있던 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를 내세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술적 공평함'은 아주 좋은 해석이다.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자, 전체 행사의 미세한 부분을 떼어주고 사회 공헌적 성격을 부각하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무엇보다 "Art"라는 분야 자체가 권위라는 기득권으로 철옹성을 쌓은 분야다.


공정의 구경장


‘Fair’라는 단어는 듣는 이를 안도하게 만든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모두가 동등하게 대접받는다는 기대. 하지만 ‘Art Fair’에 발을 들이자마자 알게 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공정의 모형, 혹은 모방품일 뿐이라는 것을.


몇몇 이목 끌기용 신진 작가들을 제외 한 대부분의 신인 작가 섹션은 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화려한 조명과 메인 갤러리들이 배치된 중앙 무대는 여전히 ‘검증된 예술가’, ‘거래 가능한 이름’들에게만 열려 있다. 즉, 자릿세가 매우 비싸다. 그리고 운 좋게 주류를 장식한 이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올라선 무대가 기득권의 구조로 인해 주어진 이익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단지 ‘공정’이라는 수사로 잠시 무대 일부를 내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의 윤리적 이미지가 보상받는다.


윤리의 상품화


공정은 이제 브랜딩 전략이다. 공정하다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조직들은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들을 기획에 초대한다. 그것은 배려이기보다 마케팅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 누구도 판단 구조와 선정 기준에 접근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에게 공정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말은, 기득권에게도 공정하게 기회를 계속 보장하겠다는 선언일뿐이다. 공정이라는 언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부의 제도 개편, 교육 현장의 평가 방식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구조는 묻는다.


“당신은 ‘공정함’을 소비하고 계신가요?”


박람회장 속 거울


Fair의 서사는 우리 자신을 향해 거울을 든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정한 시스템”을 보고 감탄했으며, 그 속에서 스스로도 공정한 시민이라고 믿어왔는가. 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떤 권위에 기댄 채, 누군가의 진입을 막고 있는가. 우리는 박람회장을 걸으며 웃고, 감동하고, 토론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거래되고 있는 도덕의 가격표는 보지 못한다.


박람회장처럼 꾸며진 공정의 공간에서는 윤리가 진열되고 소비된다. 기업은 “기회균등”을 외치며 대표자 몇 명을 채용하고, 정치인은 “형평성”을 강조하며 정책의 표면만 개편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안도한다. 실은 누구도 묻지 않는다.


“기회를 제공한 구조가 애초에 누구의 편이었는가”를...

“형평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선택권을 암묵적으로 지웠는가”를...


공정이 거래되는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표가 붙는 것은, 보상받고자 하는 도덕적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윤리적 환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최소화의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