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보다 인물, 구조보다 감정이 앞서는 조직에서
인물이 시스템을 대체하는 곳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교통안전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이 말이 단순한 안전 수칙이 아닌, 공무원 조직의 작동 원리를 매우 잘 은유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옆에는 여기를 추천한 친구 녀석이 보내온 화분이 놓여있었다. 화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발들였다. 친구야 ♡ 파이팅!!"
내가 임용된 7월 1일은 공무원 정기 인사가 있던 날이었다. 그래서 안성시의 모든 꽃집들이 '안성농업기술센터'의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했다. 헉! 그 안에 내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줄이야.
대기업에서 일할 땐 시스템이 사람을 규정했다. 매뉴얼과 절차가 있었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달랐다. 단체장의 성향, 팀장의 기분, 누가 나서느냐에 따라 일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졌다.
“그건 원래 안 되는 건데…”
“○○ 팀장님이 하신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결국 제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아~ 그냥 하면 돼요. 우리 재밌게 일하자고요."
규정은 있었지만, 그 규정은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교통체계가 지배하는 도로 위에, 보행자 혹은 버스 탑승객을 민원인이라고 한다면, 나(공무원)는 자가용 혹은 버스 운전자였다. 도로 위로 차를 몰아야 하는데 신호등을 경찰이 수동조작하는 것 같았다. 과거에 러시아워면 교통경찰이 교차로에서 차량 흐름에 맞게 조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뭐 이 정도야 공익을 위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도로 위에 난무하는 각종 공사... 출근길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벌여놓은 도로 위의 장애물들... 형광색 고깔, 경광봉을 흔드는 마네킹, 차선을 변경하라는 전광판 트럭이 서행하는 도로는 그야말로 짜증을 하나 가득 주차해 놓은 주차장이 되어버린 풍경이었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인물 중심 조직에서는 희망이 전략처럼 사용된다. '해보자'는 말이 계획을 대신하고, 실현 가능성보다 이상이 우선한다. 꿈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 꿈은 실행을 위한 구조가 아니라 동기 부여를 위한 감정으로 소비되며, 시민들의 지지와... 솔직히 말하면 '표(票)'를 받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해보다가 안 되면 실패를 분석하기보다 책임자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끝난다.
“누가 그랬어?”
“그럼 그분은 이제 그만두셔야겠네요.”
이런 방식은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패는 반복되고, 조직은 같은 길을 다시 걷는다. 희망은 감정이고, 전략은 구조다. 희망은 동기를 줄 수 있지만, 실행, 특히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많은 조직
그래서 공무원 조직 안에는 일하는 사람보다 감시하고 지시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전 회사에서 안전관리책임자가 본인의 업무를 '지도와 조언'에 국한시키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여기는 그런 사람들만 모여있었다. '내가 하는 조언이 맞으니 내 말대로 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있냐? 나는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냐고 질문하면, 그것은 담당자인, 나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마치 모범답안인양 거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대답했다. ‘시어머니가 많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다. 보고서를 쓰면 형식보다 말투를 지적받고, 기획을 하면 '그건 너무 튀어'라는 말이 먼저 돌아온다.
일보다 분위기, 성과보다 눈치가 우선되는 문화는 MZ세대가 말하는 <‘ㅈ'소기업>, <가'ㅈ'같은 회사>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 닮음은 공무원 조직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보다 관행과 눈치가 우선되는 곳. 실력보다 인맥이 중요하고, 절차보다 감정이 앞서는 곳. 그 안에서 나는 자꾸만 방향을 잃는다.
중간지원조직의 실험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중간지원조직'이다.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적 한계를, 나 같은 경력직, 계약직 '어공'을 투입해서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성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사기업의 문화를 수혈하려는 실험이다. 하지만 아직은 제약이 많다. 제도적 권한이 부족하고, 조직 내에서의 위치도 애매하다.
늘공과 어공 사이의 간극은 말투와 뉘앙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거리감은 다음 회의실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간지원조직’은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아직은 실험 단계다. 그 실험이 구조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제도와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직은 '논리와 경험' 그 사이 어딘가... 필연과 우연 그 사이 가능성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안성시는 이런 움직임에 적극적이다. 나도 그 수혜를 입은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실적을 내고 있는 조직도 있다. 큰 성과를 거둔 조직도 있다. 그런데 내가 속한 곳은 글쎄... 아직... 인물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다시 길 위에서
이 조직에서, 이 시스템 안에서 어떤 차선을 선택해야 할까.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사람이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구조’로 작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후세에게 불굴의 의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공정한 시스템을 물려줘야 한다.
요즘 세대를 나약하다며, 의지가 약하다며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럼 묻고 싶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안은 있냐고, 아니, 생각해 본 적은 있냐고, 혀만 끌끌 차고 있는 것 아니냐고, 고장 난 신호등을 발견하고 신고하지는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 대신 신고하겠지, 수수방관하지 않았냐고...
그 시스템이 사람을 보호하고, 규정하며, 성장시키는 구조가 되기를 바란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품은 전략가가 되고 싶다. 그게 내가 이 조직 안에서 선택한 차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