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환상

Measurable

by 철없는박영감
유해가스와 미세먼지를 99%까지 제거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알리는 신문광고를 봤다

숫자는 마법처럼 보였다.

99라는 수치가 주는 안정감, 과학처럼 보이는 정밀함.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조건과 맥락이 숨어 있다.


어떤 홈쇼핑 쇼호스트는 99%와 99.9%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며 식기세척기의 살균력을 강조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99.99%는 신의 영역일까?

아니면 99.999%의 살균력 성적서를 내세우는 신규 업체가 반짝 등장할까?


숫자는 우리를 안심시키고, 설득하고, 때로는 속인다.

측정가능하다는 말은 곧 ‘믿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숫자들이 진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99%의 살균력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기준으로 측정된 걸까?
99%의 공기 정화는 어떤 실험실에서, 어떤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결과일까?


한동안 유튜브 알고리즘은 경제기자와 경제학 교수의 금 투자 영상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금의 안정성과 미래 가치를 강조했고, 나는 무심코 몇 편을 봤다.

'혹'하는 마음에 얼마 전에 붇기 시작한 적금을 깨고 금투자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볼까 고민했다.

그리고 오늘, 신문에 금 투자에 자금이 몰린다는 기사가 떴다.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유튜브는 나만 본 게 아니다.

측정가능한 수익률, 그래프로 나타난 상승 곡선, 전문가의 예측.

그 모든 것이 나를 설득하려 한다.


이건 숫자로 증명된 진실입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측정가능하다는 것이 곧 진실일까?
측정되지 않는 불안, 측정할 수 없는 직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삶의 질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농담을 많이 한다.


"미세먼지 모를 땐 어떻게 살았데?"

"공기청정기 팔아먹으려고... 다 상술이야! 상술! 그놈의 마케팅!"


우리는 숫자에 기대어 살아간다.
체중계의 숫자, 스마트워치의 수면 시간, SNS의 좋아요 수.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숫자 바깥에 있다.
사랑, 신뢰, 감동, 그리고 나의 하루가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측정가능한 세계는 편리하다.
하지만 측정불가능한 세계는 더 깊고, 더 진실하다.
나는 오늘도 숫자 속에서 살지만,
진짜 삶은 언제나 그 너머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다.


우리는 measurable 한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immeasurable 한 순간들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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