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거대한 법칙을 생각하기 좋은 날
비 오는 고요 속에서
비는 오늘도 조용히 내린다.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오래된 친구가 건네는 안부처럼 다정하다. 이 새벽, 세상은 잠들었지만 나는 깨어 있다.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깊어진다. 어쩌면 이 고요함이야말로 내가 가장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새벽을 가장 피곤한 시간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되려 가장 생생한 시간이다. 낮에는 해야 할 일들에 쫓기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한 잠자고 일어난 새벽이 되면, 나는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 비가 내려주면 더욱 좋다. 빗소리는 내 마음의 소음을 덮어주고,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해 준다.
이런 새벽에는 지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빗물처럼 스며든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표정, 그때의 공기까지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들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난다.
비는 멈추지 않는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내린다.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정리하고, 아침을 준비한다. 이 새벽이 지나면 다시 바쁜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오늘의 이 고요함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 참 좁다지만...
흔히 인간관계를 조심하라는 격언? 속담?으로 세상 참 좁다는 말을 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의 순화 버전이라고 할까? 혹은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진다는 인연을 강조하는 말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화엄사상과도 맞닿아있다. 이 화엄사항을 요즘 말로 세련되게 풀어낸 것이 양자역학이다. 훗 우리가 얼마나 물질주의, 서양문물에 잠식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 수천 년 전에 불교는 답을 줬다. 번뇌를 버리고 해탈하라. 세상 좁다는 말은, 아직 내가 떠나온 곳에 미련이 남았다는 말도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가 속했던 사회에서 발을 떼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졸업앨범을 들추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연락이 뜸했던 군대 동기의 결혼 소식에 예식장을 찾기도 하고, 동창회에 나가서 술 마시고 깽판을 부리기도 하고, 이직도 하고 은퇴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각 단계별로 그 안에서 맺었던 인연을 다 끊고 나왔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만약에 다시 본다면 더 반갑게 맞을 수 있게. 안 볼 줄... 아니 못 볼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어쩌면 지금 내 전화기에 카톡방들은 미련이 남아있는 관계들이다. 안 그러면 이미 방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 관계유지를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듯이... 안 만날 사람은 안 만나게 되어있다.
어느 뮤직비디오에서 본 것 같다. 신호대기로 서 있던 횡단보도. 그 앞을 지나가는 옛 연인과 그의 새로운 사람.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 음... 소름이 돋았다. 내가 많이 공상하던 장면이니까. 그래서 신호대기에 걸리면 정지선 한 참 뒤에 서곤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에 너무 얽매일 필요 없다. 내가 사는 세상이 교집합의 집합인 것처럼 느껴지면 그것만큼 내 목을 옥죄어 오는 느낌도 없다. 세상은 나 그리고 그 외 여집합일 뿐이다.
연결의 법칙, 그리고 나
세상이 좁다는 말은 단순한 우연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내가 오늘 마주친 사람, 스쳐 지나간 풍경,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까지도 거대한 인과의 그물망 속에 있다. 그 연결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경고가 된다.
비 오는 밤에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우주의 한 점으로서 존재하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는 작지만, 무의미하지 않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 내가 품은 감정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파문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연결의 법칙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 말과 행동, 생각과 감정,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를 향해 되돌아올 것이기에. 비는 그런 나의 마음을 씻어준다. 어쩌면 이 새벽의 빗소리는 나에게 속삭이는지도 모른다.
“너는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사랑하라.”
잠은 여전히 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이 새벽은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으니까. 나는 지금, 우주의 거대한 법칙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연결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비는 나를 감싸고, 기억은 나를 이끌며, 우주는 나를 지켜본다. 잠은 오지 않지만, 나는 안다. 이 새벽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다.